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의 26일(현지 시간) 잭슨홀 연설은 30분간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늘 내 말은 더 짧고, 초점은 더 좁고, 내 메시지는 더 직접적일 것"이라며 말문을 열더니 딱 8분 28초 만에 연설을 끝내고 뒤돌아섰습니다. 정말 짧고 간결하고 명확했습니다. '시장이 원하는 빠른 전환(pivot)은 없다'라는 게 핵심이었습니다.

오전 10시 시작된 연설 직전까지 보합세를 보이던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딱 10분 만인 10시 10분 상황 판단을 끝냈습니다. 이후 제대로 된 반등 한번 없이 장 끝날 때까지 하락 세는 지속했습니다. 결국, 다우는 3.03%, S&P500 지수는 3.37% 내렸고 나스닥은 3.94%나 떨어진 채 거래를 마쳤습니다.
[김현석의 월스트리트나우] 파월 "고통 있을 것"…다우, 1000포인트 폭락
파월의 오늘 연설은 근래 모든 Fed 의장의 잭슨홀 연설 중 가장 짧았습니다. 파이퍼샌들러에 따르면 그의 연설문의 낱말 수는 1301개로 작년(2810개)의 절반에도 못 미쳤고, 2010년 벤 버냉키 전 의장(5103개)의 4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중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가 48번, '물가 안정'(price stability)이 10번을 차지했습니다. 무엇에 집중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에버코어ISI의 크리슈나 구하 전략가는 "(시장의) '전환 (기대) 반대' 연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여러 가지 설명을 많이 하다 보면 비둘기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인지, 말을 최대한 아끼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만 전한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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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빠른 전환은 없다

-역사적 기록은 조기 완화 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7월 인플레이션 수치가 낮아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한 달 동안의 개선은 훨씬 부족하다
-인플레이션이 2%를 훨씬 웃돌고 노동 시장이 극도로 빡빡한 상황에서 장기 중립 수준(추정)은 금리 인상을 멈추거나 일시 중단할 곳이 아니다

② 금리 더 높여 상당 기간 유지한다

-인플레이션을 2%까지 낮추는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지속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2%로 되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한적인 수준으로 '의도적으로' 정책을 옮기고 있다.
-물가 안정을 회복하려면 당분간 제약적 정책 기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7월에 75bp를 인상했고, 나는 다음 회의에서 비정상적으로 큰 또 다른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 물가 잡으려면 고통(침체?) 감수해야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추세 이하의 지속적 성장이 필요하다. 노동 시장이 어느 정도 악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가계와 기업에 약간의 고통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물가 안정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훨씬 더 큰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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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의장은 과거의 예를 들면서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렸던 폴 볼커 전 의장을 소환했습니다. "1980년대 초 볼커의 성공적 디스인플레이션(물가 낮추기)은 이전 15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실패한 후 발생했다. 우리의 목표는 지금 결의를 갖고 행동하여 그러한 결과를 피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작업이 완료될 때까지 긴축을 유지할 것"이라며 말을 끝냈습니다.

파월은 그동안 인플레이션을 목표인 2%로 낮추기 위해 '신속하게'(Expeditiously) 금리를 올리겠다고 밝혀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 용어는 '의도적으로'(Purposefully)라고 바뀌었습니다. Fed가 쓰는 단어는 모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놓고 경제적 고통과 침체를 각오하고 기준금리를 높이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는 뜻이란 관측도 나왔습니다. 사실 오늘 연설에서 경기 연착륙에 관한 얘기가 없었습니다.

다른 Fed 인사들도 거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의 로레타 메스터 총재는 "기준금리를 4% 위로 올린 뒤에 한동안 거기에 놔두는 게 필요할 수 있다"라고 밝혔고, 애틀랜타 연은의 라파엘 보스틱 총재는 "금리 인하를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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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욕 증시의 하락 폭은 여름 랠리가 시작됐던 6월 16일 이후 가장 컸습니다. S&P500 기업 중 단 5개 만이 플러스 마감했습니다. 기술주 내림세가 가장 컸습니다. 블록(7.76%) 텔라닥(-8.37%) 로쿠(-6.96%) 줌(-5.03%) 등 고평가 기술주가 급락했고 엔비디아(-9.23%)를 위시한 반도체 주 하락 폭은 컸습니다. 애플이 3.77% 내리는 등 빅테크도 3~5% 내렸습니다. 월가 관계자는 "애플은 그동안 시장이 하락할 때도 그보다 잘 버텼는데, 오늘 시장이 떨어지는 수준으로 하락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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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시장에서는 파월 발언 직후 금리가 크게 올랐습니다. 기준금리를 좇는 미 국채 2년물 금리는 3.47%까지 치솟았습니다. 지난 6월 14일 고점(3.44%)보다 더 높게 치솟으며 새로운 고점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기준금리를 높게 올리면 경기 침체가 올 수 있다는 관측이 강해진 탓입니다. 그래서 수익률 곡선의 역전 폭은 더 크게 벌어졌습니다. 장 막판엔 금리 상승 폭이 크게 줄었습니다. 증시가 워낙 큰 폭으로 급락하다 보니,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짙어지면서 채권에 매수세가 쏠린 것으로 해석됩니다. 2년물은 결국 전날보다 1.9bp 오른 3.372%, 10년물은 0.11bp 상승한 3.034%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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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에서는 달러 가치가 긴축 강화 전망에 또다시 강세를 보였습니다. ICE 달러인덱스는 0.32% 오른 108.8까지 올랐습니다.

피치는 "'2023년에는 Fed가 비둘기파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시장 기대에 대한 매우 명확한 반박이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비앙코리서치의 짐 비앙코 설립자는 "파월은 8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단 하나의 메시지에만 집중했다. 바로 '전환은 없다'라는 것이었다. 경제와 시장이 충격을 받아도, 박살 나도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파월의 연설은 잭슨홀 기준에 비춰볼 때 간결했고 전체적으로 매파적이었다. 이는 'Fed가 전환에 가깝고 빠르게 금리 인하로 바뀔 것'이라는 시장 생각을 반박해온 조율된 작업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르네상스 매크로의 닐 두타 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은 인플레이션을 Fed의 장기 목표(2%)로 낮추는 데 필요한 고통에 대해 더 솔직하게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추세 이하의 성장이 지속하여야 할 것 같다"라고 밝혔습니다. 찰스 슈왑의 캐시 존스 채권 전략가는 "기본적으로 파월은 Fed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경제가 둔화할 때까지 긴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파월 연설이 바뀐 게 없다는 분석도 꽤 나왔습니다. 파월 의장은 "어느 시점에서 통화정책 기조가 더욱 빡빡해지면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적절해질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발언은 지난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했던 발언으로 '금리 인상 속도 조절론'으로 풀이돼 강력한 랠리를 촉발했었습니다. 그는 또 "9월 회의 결정은 들어오는 총체적인 데이터와 진화하는 전망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Fed가 내년에는 전환할 것이라고 믿는 비둘기파들이 여전히 믿음을 유지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인플레이션은 내려가리라 생각하니까요.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마크 카바나 채권 전략가는 "채권 시장은 처음에 파월 의장의 '물가 안정을 회복하겠다'는 약속이 매파적이고 강력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2년물 금리가 올랐다. 하지만 파월의 제한적이고 명시적인 지침(데이터에 의존한다)을 감안해 장 후반에 다시 낮아졌다"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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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스트랫의 톰 리 설립자는 "파월은 인플레이션 이야기를 했는데, 올해 내내 지켜온 Fed의 입장과 일치했다. 투자자들에게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플레이션 상승 또는 인플레이션 가속화의 동인이 본질적으로 증발했다는 사실에 정말로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 알다시피, 주택 재고 수준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 없었던 수준에 거의 근접하고 있다. 자동차, 가구 등 내구재는 한동안 사치재가 됐지만, 지금은 가격이 하락해도 수요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나는 완전한 디플레이션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민간인력업체 인디드에 따르면 채용공고는 최고점에서 40%나 감소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국제금융협회(IIF)의 로빈 브룩스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은 파월을 매파적으로 본다. 그건 맞지 않는다. 그는 데이터에 의존적이고 신중하다. 그래서 한 번 둔화한 CPI 지표로는 인플레이션을 면책할 수 없고, 9월에 75bp 인상안을 유지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통상적 중앙은행의 발언일 뿐이다. 별로 들을 게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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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파월 의장의 발언 직전 발표된 미국의 7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는 전월보다 0.1%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6월 1.0% 상승에 비해 큰 폭으로 하락한 수치입니다. 1년 전에 비해선 6.3%(6월 6.8%) 올랐습니다. 또 변동성이 높은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CE 물가도 전달 대비 0.1%, 전년 대비 4.6% 각각 올랐습니다. 지난 6월(0.6%, 4.8%)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이며 월간 0.1% 상승은 2020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월간 상승률입니다.

또 오늘 발표된 미시간대 소비자태도 지수의 소비자 기대 인플레이션은 단기(12개월), 장기(5년) 모두 하락한 것으로 발표됐습니다. 단기 기대는 4.8%로 예비치(5.0%)와 7월(5.2%)보다 떨어졌고, 장기 기대는 2.9%로 예비치(3.0%)보다 낮았고 7월(2.9%)과는 같았습니다. 소비자 기대가 잘 묶여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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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모든 게 데이터에 달렸습니다. 오늘 나온 PCE 물가는 Fed가 물가 지표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지난 7월 수치입니다. 이미 지난달 초 7월 소비자물가(CPI) 발표를 보고 PCE 물가도 둔화할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9월 2일에 나올 8월 고용보고서, 그리고 9월 13일에 나올 8월 소비자물가(CPI)가 훨씬 중요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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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일에 발표될 8월 신규고용 수치의 경우 월가는 30만 개 증가를 예상합니다. 이는 지난달 52만8000개보다는 크게 줄어드는 것이지만 여전히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7월 초 이후 계속 25만 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4주 이동평균이 24만7000건입니다. 지난주에도 24만3000 건으로 나왔지요. 둔화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나빠지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8월 신규고용 32만5000개를 예상하는데요. 7월보다는 크게 내려가는 것이지만 여전히 역사적 기준으로 보면 강한 수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Fed가 좀 더 공격적으로 긴축하도록 만드는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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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8월 CPI는 안도감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Fed의 거친 발언은 일시적일 수 있다'(Fed’s Tough Talk Could Be Transitory)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8월 휘발유 가격 하락은 7월보다 훨씬 더 두드러졌으며 휘발유 선물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을 시사한다. 많은 소매유통업체는 원치 않는 재고를 줄이기 위해 할인하고 있다. 물가상승의 중요한 원인이었던 중고차 가격도 내리고 있다. 컨테이너 운송료의 급격한 하락은 공급망 문제 완화를 반영한다"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미국인에게 물가의 가장 큰 척도인 휘발유가 갤런당 5달러에 달할 때 금리를 올리는 것과 3달러대에서 금리를 인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Fed의 긴축 노력은 갑자기 평가절하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WSJ도 "주거비와 임대료는 앞으로 몇 달 동안 인플레이션 수치에 상승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고, 빡빡한 노동 시장은 Fed가 우려하는 임금 상승을 초래해 물가상승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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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클리블랜드 연방은행이 추적하는 '인플레이션 나우캐스팅'을 보면 8월 CPI는 전월 대비 0.09% 상승에 그쳐 7월(0.0%)에 이어 전달과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전년 대비로도 8.28%로 7월(8.5%)보다 낮아집니다. 하지만 에너지와 음식물을 제외한 8월 근원 물가는 7월(0.3%, 5.9%)보다 높은 0.48%, 6.25%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끈적끈적한' 요인인 주거비, 서비스 물가(임금)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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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상황이죠.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오늘 75bp 인상 베팅이 61.5%, 50bp 인상 베팅이 38.5%였습니다. BMO의 이안 링겐 채권 전략가는 "파월의 발언은 시장 기대치와 매우 일치했다. 그는 9월 금리 인상의 규모는 데이터의 '총체성'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금리 인상이 있을 것이고, 7월 인플레이션 데이터로서는 테이블에서 75bp를 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최소한 9월 13일 8월 CPI가 발표될 때까지 논쟁은 75bp 대 50bp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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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