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자 오지 못해 사업 차질…유럽, 일본 등도 마찬가지
남아공 비자 발급 지연 8개월째…한국 대기업도 '발동동'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주재원 비자 발급이 올 초부터 8개월째 지연되면서 삼성, LG, 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들이 직원 교체에 차질을 빚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현지 대기업 임원은 2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직원이 발령된 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못 들어오고 한국에 돌아갈 직원도 못 가고 있다"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남아공 정부의 이율배반적인 비자 지연 사태에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이 회사 한 직원은 당초 비자가 순조롭게 나올 것으로 보고 이미 이삿짐을 남아공에 보냈는데 비자가 안 나와 몸은 못 오고 짐만 먼저 동부 더반 항구에 도착해 있는 상태다.

더구나 하반기에만 주재원 몇 명이 교체 예정이라, 당분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때워야 하는 형국이다.

다른 대기업 간부도 "인사철이 아니어서 당장 주재원 교체는 별문제가 없는데 주재원 가족 비자 갱신 문제가 걸려 있다"면서 "지연사태가 더 장기화하면 우리도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기업 지사장은 비자가 너무 안 나오자 아예 1개월 무비자로 일단 남아공에 입국해서 일을 보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비자 발급 지연 사태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일부 주재원 자녀들이 다니는 아메리칸 스쿨의 경우 미국인 교사 교체가 안 돼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수업을 하고 있고 독일어 학교도 독일에서 와야 할 교사 교체를 못 하고 애를 태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일본 은행 간부도 "비자가 갱신이 안 돼 일본에 갔다가 우선 들어와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에 대해서는 무비자 방문 기간이 1개월이지만 그나마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상호주의에 따라 3개월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어 여유가 좀 더 있는 편이라고 한다.

다른 일본 방송사 특파원도 인사 발령이 나서 귀국해야 하는 데 후임자가 비자 문제 때문에 오지 못해 업무를 연장해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도 남아공에 500억 랜드(약 4조원) 규모의 투자 사업을 진행하는 데 엔지니어와 금융전문가가 비자 지연으로 입국을 못 해 지장을 받는 등 다른 다국적 기업들도 비슷한 사정이다.

프랑스 측은 이에 남아공 현지 사업을 접고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비즈니스테크가 24일 보도했다.

올 1분기 남아공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는 272억 랜드다.

실제로 비자가 워낙 안 나오자 직원 발령을 아예 다른 곳으로 낸 회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사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처럼 비자가 오래 안 나오는 이유는 남아공 비자 발급 부서인 내무부에서 당국자들이 리베이트 수수 등 부패 혐의가 적발돼 한꺼번에 사퇴하거나 해고됐기 때문이다.

또 상당수 직원의 재택근무 일상화로 비자 발급 관련 보안문서를 전산화하는 작업이 병행돼 병목 현상이 더 심해졌다.

이밖에 기록적인 실업률을 겪는 남아공이 가급적 외국에서 파견되는 직원보다 남아공 현지 직원을 채용하라는 정책을 비자 발급과 연계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철주 주남아공 대사는 "유럽연합(EU), 영국, 미국 등과 공동으로 비자 발급 지연에 항의하는 서한을 남아공 정부에 보내고 주한 남아공 대사에게 협조를 구하는 등 여러 경로로 요청을 하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한-남아공 수교 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만난 은톰비조드와 랄리 국제관계협력부 사무차관보 대행은 비자 지연 사태에 대한 연합뉴스의 질문에 "잘 알고 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책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남아공에서 투자하고 사업을 하는 한국 기업은 약 40곳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