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빈 배우 "세상엔 흰고래와 함께 사는 '외뿔고래' 많아요"
“제가 기자님들 명함을 받아도 될까요?”

낯선 풍경이었다.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는 배우가 기자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하나하나 명함을 ‘수거’하기 시작했다. 명함을 받을 때마다 눈을 꼭 맞췄고, 미소도 잊지 않았다.

지난 22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박은빈(사진)은 여느 연예인과 달랐다. 드라마 종영 기념 인터뷰와 같은 대규모 간담회에서 연예인이 기자들의 명함을 받는 일은 드물다. 통상 기획사 홍보 담당자들이 받는다. 박은빈은 이렇게 받은 명함을 테이블에 올려놓더니, 기자들이 앉은 자리에 맞춰 순서대로 배열했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기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박은빈은 “인터뷰가 끝나면 명함만 남더라. 여러분과 같이 있었던 순간을 추억하고 싶어 명함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도 달랐다. 하고 싶은 말만 일방적으로 전달하려고 하지 않았다. 준비도 많이 한 모습이었다. 그걸 지켜본 한 기자는 “우영우처럼 따뜻하고 영리한 배우”라고 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변호사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은 이 드라마는 자타가 공인하는 올해 최고 화제작이다. 0.9%에 불과했던 시청률(1회)은 입소문을 타고 17.5%(마지막 16회)로 뛰었다. 박은빈은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지만 실제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자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우영우가 단번에 박은빈을 사로잡은 건 아니었다. 그는 우영우 출연을 1년 동안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쉬운 마음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좋은 작품이라는 느낌은 왔지만, ‘배우로서 어떻게 해내야 할까’란 걱정이 컸거든요. 연기할 때 어떤 톤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죠.”

그는 영우를 연기하기 위해 자폐 관련 영상 자료를 찾아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신 자폐 진단 기준 등을 꼼꼼히 살펴보며 캐릭터를 쌓아갔다. “자폐라는 특성을 캐릭터의 한계로 두고 싶진 않았어요. 연기할 때도 증상 구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는 마지막 회에 나온 친모 태수미 변호사(진경 분)와의 대화를 꼽았다. 영우는 이 장면에서 자신을 흰고래 무리에 속해 지내지만, 그들과는 다른 외뿔고래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저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저를 싫어하는 고래들도 많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게 제 삶이니까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박은빈은 “이 대사에 자폐인을 넘어 이 세상 모든 외뿔고래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다”며 “외뿔고래처럼 사는 분들에게 ‘이 세상엔 흰고래와 함께 살아가는 외뿔고래가 많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은 신생 채널 ENA에서 방영됐는데도 큰 성공을 거둬 더욱 화제가 됐다. “애초 시청률이 목표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되다 보니 자폐 커뮤니티가 큰 미국에선 우영우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하더라고요. ENA도 잘되고, 넷플릭스 성적도 좋아 뿌듯합니다.”

시즌2 출연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건 없다”고 했다. “사랑을 받은 만큼 후속작은 오리지널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사랑에 보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