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속재산처리법 '국내에서 설립된 일본 영리법인' 해석 기준 첫 제시
대법 "일제때 한국에 본점 없던 日기업 재산, 귀속 가능"(종합)
해방 전부터 일본법인이 소유한 국내 소재 재산을 대한민국에 귀속시킬 수 있는지는 그 법인의 본점이나 주 사무소의 소재지에 따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한국농어촌공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이 사건은 한 저수지의 제방(둑)으로 사용되고 있는 토지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토지대장을 보면 이 땅의 소유권은 1920년 일본 법인인 A사로 넘어갔다.

해방 후에는 군청이 토지를 관리했으며 1977년 농촌근대화촉진법에 따라 인근 농지개량조합으로 관리권이 다시 이관됐다.

농지개량조합이 갖고 있던 모든 권리 의무는 제도 변화에 따라 농업기반공사에 포괄 승계됐고, 농업기반공사는 현재의 한국농어촌공사로 이어졌다.

이를 근거로 농어촌공사는 2020년 국가를 상대로 토지의 소유권 이전 등기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은 농어촌공사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토지의 주인은 대한민국 정부도 아닌 일본 법인 A사이니 아예 농어촌공사의 청구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1·2심이 토지의 주인을 A사로 본 근거는 귀속재산처리법 조항 때문이다.

이 법의 2조 3항은 '1945년 8월 9일 이전 국내에서 설립된 일본 법인의 주식이나 지분은 귀속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돼 있다.

즉 주식이나 지분만 귀속될 뿐 토지 같은 부동산은 국내에서 설립된 일본 법인 고유 자산으로 본 것이다.

이 같은 조항에 따라 1·2심은 다툼이 된 토지 역시 대한민국 재산으로 볼 수 없다고 봤다.

국가가 2심 선고 직전에 마친 토지 소유권 보존 등기의 효력도 같은 이유에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토지 대장상 소유 명의자가 일본 법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속재산(일본 기관이나 일본인, 일본 단체가 소유했으나 미군정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에 이양된 재산)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며 원심을 파기했다.

한국 내에서 설립된 일본 법인이더라도 일본에 본점이나 주 사무소를 둔 채 한국 재산을 취득한 경우라면 달리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소유재산이 귀속재산에서 제외되는 '국내에서 설립된 영리법인'이란, 국내에 주된 사무소나 본점을 두고 설립된 법인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대전제를 세웠다.

이에 따라 문제의 토지 소유자를 일본 법인으로 보려면 단순히 토지 대장상 소유권자가 A사인 것으론 부족하고, A사의 본점이나 주된 사무소가 일본에 있었는지, 한국에 있었는지를 명확히 따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농어촌공사가 관련 법령에 따라 이 토지에 관한 일체의 권리 의무를 넘겨받았는지도 더 밀도 있게 심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해방 전부터 일본 법인이 소유했던 국내 소재 재산이 귀속재산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처음으로 명확히 제시한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