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인슈타인에 반기 든 교수 "시간은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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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김영사
492쪽|2만4800원
현대물리학계서 혁명적 주장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주류론에 반대
"시간은 실재한다는 사실 받아들여야"
"세상을 수학의 관점으로만 본다" 비판
상대성이론 등은 우주의 일부만 설명
물리학 최전선에 벌어지는 논쟁 다뤄
리 스몰린 지음
강형구 옮김
김영사
492쪽|2만4800원
현대물리학계서 혁명적 주장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주류론에 반대
"시간은 실재한다는 사실 받아들여야"
"세상을 수학의 관점으로만 본다" 비판
상대성이론 등은 우주의 일부만 설명
물리학 최전선에 벌어지는 논쟁 다뤄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은 완고하고 끈질긴 환상에 불과합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55년 3월 친구 미셸 베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유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이 우주에 동시에 존재하기에 그의 죽음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위로의 말이었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현대 주류 물리학이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시간의 흐름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은 여기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 리 스몰린은 미국의 유명 이론 물리학자다. 1979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연구소와 대학을 거쳐 지금은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로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인 ‘고리 양자중력 이론’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현대 물리학계에서 혁명적인 주장으로 통한다. 왜 그럴까. 이를 알기 위해 기초 물리학 문제를 생각해보자. 건물 옥상에서 던진 공의 궤적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X축이 시간, Y축이 높이인 좌표평면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간단한 2차 방정식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표현한 가장 간단한 그래프다. 초기 조건(건물 높이, 던지는 속도)만 알면 미래에 공이 어디에 위치해 있을지 알 수 있다. ‘마이너스 시간’을 넣어도 상관없다. 건물을 뚫고, 혹은 땅을 뚫고 공이 거꾸로 움직일 때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는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란 개념을 시공간의 상대성으로 바꿔놨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시대에 와서도 ‘물리법칙의 비시간성’은 여전하다는 게 스몰린의 지적이다. 시간과 관계없이 초기 조건만 알면 입자든, 행성이든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거꾸로 돌려볼 수도 있다. 영화에 비유하면 시간은 영화를 앞뒤로 돌려보는 역할을 할 뿐, 영화 내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대의 물리학 방정식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를 ‘블록 우주’라고 한다. ‘영원주의’라고도 불리며 미래가 이미 결정돼 있는 우주다. 영화에서 과거로,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이런 우주관에 기반한다.
사실 물리학자들이 방정식을 신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했는데, 실제로 발견됐다. 1928년엔 폴 디랙이 상대론적 양자역학과 관련한 방정식을 풀다가 해(解)가 실수와 허수로 나오는 것을 보고, 반입자의 존재를 예견했다. 1932년 전자와 대칭을 이루는 양전자(반전자)가, 1955년에는 반양성자가 발견되면서 증명됐다.
그런데 스몰린은 이런 행태가 너무 과하다고 본다. 수학에 매몰돼 수학 속 세계와 실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른바 ‘상자 속 물리학’이다. 한 부분만을 따로 떼놓고 수학으로 풀 때는 괜찮지만, 전 우주에 적용할 때 모순이 생긴다. 스몰린이 볼 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모두 우주의 일부분만 설명하는 방정식이며, 근사치다. 그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중우주론 등 기이한 아이디어를 들고나올 게 아니라 시간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몰린은 의문을 표한다. 왜 이론적으로 가능한 시간의 되돌림이 현실에선 관찰되지 않는 것인지. 우주는 빅뱅 이후 130억 년이 흘렀지만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 것으로 보인다. 우주는 팽창하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며, 모든 생물은 죽는다. 그는 시간은 정말로 흐르며, 우주의 법칙도 시간에 따라 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느끼는 ‘지금’은 현실이며,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 열려 있다는 것이다.
책은 수식 하나 없지만 상당히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학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이해하기 위해선 물리학의 철학적 개념은 물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우주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을 담고 있는 만큼 다른 책도 같이 읽어보면 좋다.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가 있다. 로벨리는 스몰린과 함께 고리 양자중력 이론을 창안했지만 시간에 대해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나우: 시간의 물리학>은 스몰린처럼 시간이 실재한다는 주장을 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55년 3월 친구 미셸 베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유족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과거와 현재, 미래 모두 이 우주에 동시에 존재하기에 그의 죽음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위로의 말이었다. 기이하게 들리겠지만 이게 현대 주류 물리학이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즉, 시간의 흐름은 환상이라는 것이다.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은 여기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저자 리 스몰린은 미국의 유명 이론 물리학자다. 1979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여러 연구소와 대학을 거쳐 지금은 캐나다 워털루대 교수로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인 ‘고리 양자중력 이론’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시간은 실재한다”고 말한다.
‘시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현대 물리학계에서 혁명적인 주장으로 통한다. 왜 그럴까. 이를 알기 위해 기초 물리학 문제를 생각해보자. 건물 옥상에서 던진 공의 궤적을 수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X축이 시간, Y축이 높이인 좌표평면에서 포물선을 그리는 간단한 2차 방정식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표현한 가장 간단한 그래프다. 초기 조건(건물 높이, 던지는 속도)만 알면 미래에 공이 어디에 위치해 있을지 알 수 있다. ‘마이너스 시간’을 넣어도 상관없다. 건물을 뚫고, 혹은 땅을 뚫고 공이 거꾸로 움직일 때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이는 뉴턴의 고전역학이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통해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이란 개념을 시공간의 상대성으로 바꿔놨다. 하지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시대에 와서도 ‘물리법칙의 비시간성’은 여전하다는 게 스몰린의 지적이다. 시간과 관계없이 초기 조건만 알면 입자든, 행성이든 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거꾸로 돌려볼 수도 있다. 영화에 비유하면 시간은 영화를 앞뒤로 돌려보는 역할을 할 뿐, 영화 내용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현대의 물리학 방정식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구분하지 않는다. 시간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를 ‘블록 우주’라고 한다. ‘영원주의’라고도 불리며 미래가 이미 결정돼 있는 우주다. 영화에서 과거로,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이런 우주관에 기반한다.
사실 물리학자들이 방정식을 신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했는데, 실제로 발견됐다. 1928년엔 폴 디랙이 상대론적 양자역학과 관련한 방정식을 풀다가 해(解)가 실수와 허수로 나오는 것을 보고, 반입자의 존재를 예견했다. 1932년 전자와 대칭을 이루는 양전자(반전자)가, 1955년에는 반양성자가 발견되면서 증명됐다.
그런데 스몰린은 이런 행태가 너무 과하다고 본다. 수학에 매몰돼 수학 속 세계와 실제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른바 ‘상자 속 물리학’이다. 한 부분만을 따로 떼놓고 수학으로 풀 때는 괜찮지만, 전 우주에 적용할 때 모순이 생긴다. 스몰린이 볼 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모두 우주의 일부분만 설명하는 방정식이며, 근사치다. 그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중우주론 등 기이한 아이디어를 들고나올 게 아니라 시간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몰린은 의문을 표한다. 왜 이론적으로 가능한 시간의 되돌림이 현실에선 관찰되지 않는 것인지. 우주는 빅뱅 이후 130억 년이 흘렀지만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 것으로 보인다. 우주는 팽창하고, 엔트로피는 증가하며, 모든 생물은 죽는다. 그는 시간은 정말로 흐르며, 우주의 법칙도 시간에 따라 변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느끼는 ‘지금’은 현실이며,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 열려 있다는 것이다.
책은 수식 하나 없지만 상당히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물리학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다루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이해하기 위해선 물리학의 철학적 개념은 물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우주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결론이 나지 않은 논쟁을 담고 있는 만큼 다른 책도 같이 읽어보면 좋다. 가장 대표적인 책으로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가 있다. 로벨리는 스몰린과 함께 고리 양자중력 이론을 창안했지만 시간에 대해선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나우: 시간의 물리학>은 스몰린처럼 시간이 실재한다는 주장을 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