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9명 구조, 25명 대피…시, 오전 중 도로 등 응급복구 "거실에 물이 허벅지까지 찼고 아수라장이 됐더라고. 자다가 물벼락을 맞았지."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 장덕2리에 사는 함명표(84)·김윤자(81)씨 부부는 깜깜한 밤 집에 갑자기 들어찬 물에서 급히 빠져나오면서도 20년 전인 2002년 8월 말 태풍 '루사'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17일 오전 0시 10분께 이 마을에 내린 폭우로 신리천과 이어지는 서북개골천이 범람하면서 주변 주택 10여 가구가 물에 잠겼다.
차량은 물에 떠밀려 집에 걸렸고 오토바이와 자전거는 곳곳에 나뒹굴었다.
수확을 앞둔 고구마와 고추밭도 모래가 뒤덮었고 이삭이 팬 벼는 물에 잠겼다.
주민들은 상류에서 떠내려온 나무 등이 박스통로 형태로 된 교량에 걸리면서 신리천과 연결된 서북개골천이 범람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할머니는 "사방이 다 물이고 냉장고는 넘어지고, 집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며 공포에 떨던 지난 밤을 회고했다.
집에서 떠내려간 물건이 있는지 인근 신리천까지 나왔던 김 할머니는 "20년 전 루사 때도 논밭은 물론 집까지 모두 침수됐는데 이번에 또 피해를 봤다"며 "살아생전 어떻게 두 번씩이나 이런 난리를 겪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나뒹굴던 농약 통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이 마을은 2002년 8월 31일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을 강타해 초토화하다시피 한 태풍 루사로 엄청난 피해를 봤던 곳이다.
당시 강릉에는 기상관측 이후 최대 일일 강수량인 870.5㎜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사망 46명, 실종 5명, 부상 17명 등 68명의 인명피해와 8천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국가 전체적으로도 5조1천479억원의 재산 피해는 물론 사망·실종자 246명, 이재민 6만3천85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다.
엄청난 피해를 경험한 이 마을 주민들은 루사 이후 집을 대부분 1m∼1.5m 높이 지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거나 하천과 가까운 곳의 주민들은 이번에도 집이 허리춤까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이웃 주민 함모(39)씨도 "갑자기 불어난 물에 집이 침수되는 것은 면했으나 논과 과수원은 물론 창고와 오토바이, 차, 비료 등 많은 것이 물에 잠겨 못쓰게 됐다"고 말했다.
그도 이번 피해를 보면서 20년 전 루사 악몽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 당시 다리는 다 떠내려가고 도로는 모두 끊겨 주문진읍까지 걸어 다녀야만 했다.
함씨는 "지금 불어난 물길이 루사 때 물길이랑 똑같다"며 "인명피해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최훈길(64) 장덕1리 이장은 "밤새 차가 둥둥 떠다니고 도로와 다리가 냇물처럼 물이 흘렀다"며 "마을은 허리까지 잠겼는데 119와 행정당국의 조치로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전했다.
이날 수해로 주민 9명이 소방당국에 의해 구조됐고, 25명은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는 등 인명피해는 없었다.
강릉시는 중장비 6대를 동원해 오전 중 도로 등은 응급복구를 마치고 침수 주택 등에는 공무원과 자율방재단, 군인 등 170명을 투입해 오늘 중 상황을 종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