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수출 신청 94% 승인…반도체·항공·AI·군사기술 계속 수출
"獨·日·韓 등에 자리 뺏길까 우려…동맹도 똑같이 규제해야" 주장도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이 중국의 첨단기술 훔치기를 막는다면서도 실제로는 민감한 기술 관련 수출을 대부분 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 1천250억 달러에서 0.5% 미만은 미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는 기술 관련 품목인데, 이 중 94%에 해당하는 2천652건의 대중 기술 수출 신청이 승인됐다고 WSJ은 분석했다.

이로 인해 반도체, 항공우주 부품, 인공지능(AI) 기술은 물론 중국의 군사 기술에 사용될 수 있는 물품까지 미국에서 중국으로 계속 수출됐다는 것이다.

대중 기술 수출 승인은 상무부, 국방부, 국무부, 에너지부 등 유관 부처들이 합동으로 결정하지만, 그중에서도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상무부가 국가안보보다 미국의 무역 이해관계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WSJ은 전했다.

WSJ에 따르면 미 국방부에서 대중 수출규제 분석을 담당하던 스티브 쿠넨은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 있는 기술 수출 면허의 허가율이 너무 높은 것은 정책적 실패의 증거라며 지난해 9월 사직서를 제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상무부에서 수출규제 업무를 이끌었던 미라 리카르델은 WSJ에 "중국은 우리가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면서 "미중 관계가 경제적으로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관해 미 정부 내에 컨센서스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을 지낸 매슈 포틴저도 BIS가 "미국의 국가안보 보호라는 임무와 수출 증진이라는 상무부의 목표를 조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비판했다.

포틴저 전 부보좌관은 지난 2019년 말 백악관 상황실에서 BIS 관리들을 소집해 특별회의를 열어 이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고 이 사안을 잘 아는 소식통들이 WSJ에 밝혔다.

이런 비판에 대해 상무부 수출규제 담당 차관보인 테아 로즈먼 켄들러는 "우리는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증진하고 있다"며 수출 승인 결정에 대해 유관 부처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데도 그런 경우가 많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일각에서는 미국이 대중 기술 수출을 까다롭게 규제하면 독일, 일본, 한국 등 동맹국들이 그 빈자리를 메울 것으로 염려한다고 WSJ은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상무부 고위 관리였던 케빈 울프는 "동맹국들도 우리와 같은 규제를 적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