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대표팀 '캡틴' 김광민 "트라이의 희열…말로는 설명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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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전이 선전?…패배에 화 끓어"…프로 출범한 일본과 격차 지적
'럭비 변방' 한국, 내달 7인제 월드컵 출전…"미국 전지훈련서 희망 봐"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하면 못하는 친구가 있기 마련인데, 저는 그런 친구를 싫어했어요.
걔 탓에 나도 지니까요.
"
패배가 싫다는 한국 럭비대표팀 주장 김광민(34·한국전력)에게 '얼마나 싫은지' 묻자 웃으며 내놓은 설명이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자리잡은 대한럭비협회 회의실에서 만난 김광민은 "나이가 들면서 이런 부분이 좀 덜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지는 건 질색"이라고 거듭 말했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광민은 최근 유달리 뼈아픈 패배를 당하면서 더욱 지기 싫어졌다.
특히 지난달 9일 인천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홍콩과 아시아 럭비챔피언십 결승전 패배가 더 사무친다.
김광민이 이끈 15인제 대표팀은 경기 종료 1분 전까지 21-20으로 앞서 승리를 목전에 뒀다.
그러나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홍콩 선수들을 막다가 페널티킥을 내줬고, 킥으로 3점을 헌납하며 그대로 패했다.
경기 후 취재진 앞에 선 김광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경기 종료까지) 1분 남았을 때 선수들끼리 하나만 막자, 막자, 막자 이야기했다"며 "페널티킥을 내준 순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덤덤한 태도 뒤에서 김광민은 패배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를 되돌아본 김광민은 "도저히 질 경기가 아니었다"며 "화가 끓어오르다보니 오히려 더 덤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포함한 선수들이 집중을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반칙 없이 지키기만 했어도 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 경기에서 대표팀 선수들은 무척 선전했다.
당시 월드럭비(WR) 랭킹에서도 한국(30위)이 홍콩(22위)에 밀렸을뿐더러, 대부분 영국계 선수들로 꾸려진 홍콩 선수단은 체격에서도 태극전사들을 앞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기 전인 2019년 마지막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홍콩에 3-64로 완패한 바 있다.
경기 막판 아쉽게 역전패를 허용했지만 럭비계에서는 홍콩과 격차를 좁혔다는 호평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김광민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쯤하면 됐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고 곱씹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줄곧 이겼다"는 김광민도 대표팀에서는 패배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은 15인제 럭비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럭비 변방'이기 때문이다.
15인제 월드컵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올림픽에 이어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로 꼽힐 정도로 세계적으로 럭비가 흥행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여러 '비인기 종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김광민 역시 비인기 종목 선수의 현실과 맞닥뜨려 왔다.
그는 "대학교 때 동료들과 택시를 타면 다들 덩치가 좋아 항상 기사님이 무슨 운동을 하는지 물어봤다"며 "럭비라고 답하면 꼭 미식축구로 오해를 하시더라. 매번 그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당장 김광민이 바라는 건 럭비 프로리그의 출범이다.
김광민은 "홍콩도 우리와 비등하다가 프로리그를 만든 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어느 스포츠든 발전하려면 자국 리그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민이 꼽은 모범 사례는 일본이다.
2003년 프로럭비 톱리그를 출범한 일본은 16년 월드컵까지 개최해 8강 진출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현재 세계 랭킹 10위로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세계 강호와도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
김광민은 "솔직히 이제 한일전은 거의 못 이기는 경기가 됐다"며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선배들 중에는 '정신력으로 이겨야지'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제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15인제에서 고전 중인 한국은 7인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7인제는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만큼 속도를 통해 경기를 풀 수 있다.
대표팀은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7인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2005년 홍콩 대회에서 최하위인 공동 21위로 대회를 마친 후 첫 진출이다.
7인제 대표팀은 한달가량 앞으로 다가온 대회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달 25일부터 대한럭비협회 지원을 받고 떠난 보름 동안의 미국 전지훈련에서 미국,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강호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며 희망을 봤다.
김광민은 "총 6경기에서 1승 2무 3패를 거뒀다"며 "미국 2군 팀과 두 차례 경기해 처음에는 지고 두 번째 경기는 35-0으로 이겼다"고 말했다.
이어 "호흡이 잘 맞았다"며 "상대가 2군팀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177㎝의 작은 체구지만 발이 빨라 측면에서 트라이(상대 진영의 인골(in goal) 지역에 공을 찍어 득점이 인정되는 것)를 노리는 김광민도 이제 15인제보다 7인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발이 빨랐다는 김광민은 발을 묶으려는 상대의 태클을 십수년 째 마주하고 있다.
"아직도 덩치 큰 외국 선수를 보면 무섭다"며 웃음을 지은 김광민은 "경기 중 몇 번 부딪치다보면 또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경기 중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럭비가 아직도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는 "상대 수비 틈을 헤집고 나서 트라이를 성공할 때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라며 "오죽하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 사이 틈을 보면 돌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허허 웃었다.
이런 김광민도 30대에 접어 들어 발이 느려졌음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홍콩전에서 상대 인골 지역 바로 앞에서 번번이 잡혀 트라이에 실패했다며 동료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광민은 "10년 전 100m 기록이 11초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더 느려졌다"며 "팀원들이 열심히 호흡을 맞춘 덕에 측면에서 기회를 난 것이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라며 곱씹었다.
그가 꼽은 럭비의 매력은 연대의식과 팀 플레이였다.
킥을 제외하고는 전진 패스가 허용되지 않는 럭비에서는 축구와 다르게 팀원 전체가 합을 맞추며 조금씩 전진할 수밖에 없다.
김광민은 "럭비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서 경기를 바꿀 수 없다"며 "모든 득점은 팀원끼리 희생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럭비 변방' 한국, 내달 7인제 월드컵 출전…"미국 전지훈련서 희망 봐"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하면 못하는 친구가 있기 마련인데, 저는 그런 친구를 싫어했어요.
걔 탓에 나도 지니까요.
"
패배가 싫다는 한국 럭비대표팀 주장 김광민(34·한국전력)에게 '얼마나 싫은지' 묻자 웃으며 내놓은 설명이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 자리잡은 대한럭비협회 회의실에서 만난 김광민은 "나이가 들면서 이런 부분이 좀 덜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지는 건 질색"이라고 거듭 말했다.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광민은 최근 유달리 뼈아픈 패배를 당하면서 더욱 지기 싫어졌다.
특히 지난달 9일 인천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홍콩과 아시아 럭비챔피언십 결승전 패배가 더 사무친다.
김광민이 이끈 15인제 대표팀은 경기 종료 1분 전까지 21-20으로 앞서 승리를 목전에 뒀다.
그러나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홍콩 선수들을 막다가 페널티킥을 내줬고, 킥으로 3점을 헌납하며 그대로 패했다.
경기 후 취재진 앞에 선 김광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경기 종료까지) 1분 남았을 때 선수들끼리 하나만 막자, 막자, 막자 이야기했다"며 "페널티킥을 내준 순간,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덤덤한 태도 뒤에서 김광민은 패배에 대한 분노를 억누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를 되돌아본 김광민은 "도저히 질 경기가 아니었다"며 "화가 끓어오르다보니 오히려 더 덤덤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포함한 선수들이 집중을 못했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반칙 없이 지키기만 했어도 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이 경기에서 대표팀 선수들은 무척 선전했다.
당시 월드럭비(WR) 랭킹에서도 한국(30위)이 홍콩(22위)에 밀렸을뿐더러, 대부분 영국계 선수들로 꾸려진 홍콩 선수단은 체격에서도 태극전사들을 앞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기 전인 2019년 마지막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홍콩에 3-64로 완패한 바 있다.
경기 막판 아쉽게 역전패를 허용했지만 럭비계에서는 홍콩과 격차를 좁혔다는 호평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김광민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이쯤하면 됐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고 곱씹었다.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줄곧 이겼다"는 김광민도 대표팀에서는 패배를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은 15인제 럭비 월드컵 본선 무대를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럭비 변방'이기 때문이다.
15인제 월드컵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올림픽에 이어 세계 3대 스포츠 행사로 꼽힐 정도로 세계적으로 럭비가 흥행하지만, 한국에서는 그저 여러 '비인기 종목'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김광민 역시 비인기 종목 선수의 현실과 맞닥뜨려 왔다.
그는 "대학교 때 동료들과 택시를 타면 다들 덩치가 좋아 항상 기사님이 무슨 운동을 하는지 물어봤다"며 "럭비라고 답하면 꼭 미식축구로 오해를 하시더라. 매번 그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되돌아봤다.
당장 김광민이 바라는 건 럭비 프로리그의 출범이다.
김광민은 "홍콩도 우리와 비등하다가 프로리그를 만든 후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며 "어느 스포츠든 발전하려면 자국 리그가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민이 꼽은 모범 사례는 일본이다.
2003년 프로럭비 톱리그를 출범한 일본은 16년 월드컵까지 개최해 8강 진출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현재 세계 랭킹 10위로 아시아 국가로는 유일하게 세계 강호와도 대등하게 맞서고 있다.
김광민은 "솔직히 이제 한일전은 거의 못 이기는 경기가 됐다"며 "격차가 벌어진 상태다.
선배들 중에는 '정신력으로 이겨야지'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제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15인제에서 고전 중인 한국은 7인제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7인제는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만큼 속도를 통해 경기를 풀 수 있다.
대표팀은 9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7인제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따냈다.
2005년 홍콩 대회에서 최하위인 공동 21위로 대회를 마친 후 첫 진출이다.
7인제 대표팀은 한달가량 앞으로 다가온 대회를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지난달 25일부터 대한럭비협회 지원을 받고 떠난 보름 동안의 미국 전지훈련에서 미국,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등 강호들과 연습경기를 치르며 희망을 봤다.
김광민은 "총 6경기에서 1승 2무 3패를 거뒀다"며 "미국 2군 팀과 두 차례 경기해 처음에는 지고 두 번째 경기는 35-0으로 이겼다"고 말했다.
이어 "호흡이 잘 맞았다"며 "상대가 2군팀이긴 했지만 압도적인 경기력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177㎝의 작은 체구지만 발이 빨라 측면에서 트라이(상대 진영의 인골(in goal) 지역에 공을 찍어 득점이 인정되는 것)를 노리는 김광민도 이제 15인제보다 7인제에 집중할 계획이다.
어릴 때부터 발이 빨랐다는 김광민은 발을 묶으려는 상대의 태클을 십수년 째 마주하고 있다.
"아직도 덩치 큰 외국 선수를 보면 무섭다"며 웃음을 지은 김광민은 "경기 중 몇 번 부딪치다보면 또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경기 중 속도감을 느낄 수 있는 럭비가 아직도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는 "상대 수비 틈을 헤집고 나서 트라이를 성공할 때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라며 "오죽하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 사이 틈을 보면 돌파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허허 웃었다.
이런 김광민도 30대에 접어 들어 발이 느려졌음을 체감하고 있다.
특히 홍콩전에서 상대 인골 지역 바로 앞에서 번번이 잡혀 트라이에 실패했다며 동료에게 미안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광민은 "10년 전 100m 기록이 11초 초반이었는데 지금은 더 느려졌다"며 "팀원들이 열심히 호흡을 맞춘 덕에 측면에서 기회를 난 것이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라며 곱씹었다.
그가 꼽은 럭비의 매력은 연대의식과 팀 플레이였다.
킥을 제외하고는 전진 패스가 허용되지 않는 럭비에서는 축구와 다르게 팀원 전체가 합을 맞추며 조금씩 전진할 수밖에 없다.
김광민은 "럭비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혼자서 경기를 바꿀 수 없다"며 "모든 득점은 팀원끼리 희생한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