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산불 자원봉사갔다 방화범 오인…11개월 억울한 옥살이
그리스 산불 진압 자원봉사에 나섰다가 졸지에 방화범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한 40대 남성이 11개월 만에 누명을 벗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10일(현지시간) 그리스 영자 신문 '그릭 헤럴드'에 따르면 아테네 법원은 지난달 11일 테오도시스 카쿠리스의 방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카쿠리스는 "축하할 기분은 아니었다"며 "씁쓸했고, 여전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7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난 카쿠리스는 8살 때 가족과 함께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 이주했다.

카쿠리스는 지난해 8월 그리스에서 초대형 산불이 일어나자 오토바이를 몰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테네 근처에 있는 천연 보호림인 바리보비 숲이 소실될 위기에 처한 것을 보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신발이 녹을 정도의 열기를 견뎌내며 며칠째 화마와 사투를 벌였지만, 그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이 지역 주민이 오토바이를 몰고 산불 현장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고 신고했는데, 경찰이 카쿠리스를 방화범으로 특정한 것이다.

카쿠리스의 소지품에선 라이터, 성냥 등 방화에 쓰일만한 물품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수사기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에서 한 자원봉사자는 카쿠리스가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불길이 치솟았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그는 발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카쿠리스의 도움을 받은 바리보비 주민들이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직접 나섰다.

한 주민은 "그(카쿠리스)는 불을 끄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이렇게 많이 도와준 사람이 방화범일 리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근방에 있던 다섯 채의 집 중 네 채를 구했다"며 카쿠리스의 노력과 헌신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증거로 제시했다.

주민들까지 발 벗고 나섰지만 카쿠리스는 11개월간 철창 속에 갇혀 지내야 했다.

카쿠리스의 변호인이 바리보비 숲 발화점이 전신주라는 소방 당국의 조사 결과를 증거로 제시한 뒤에야 카쿠리스는 무죄로 풀려났다.

그는 "주심 재판관은 사법 착오에 대해 언급하며 내게 앞으로도 선행을 계속하길 바란다고 말했지만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카쿠리스는 "다시는 불 가까이 가지 않겠다"며 쓰린 표정을 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