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라이프 in 뉴욕
‘풀만 먹고 산다는데 무슨 맛이 있어서 평생을 버티냐’ ‘그거 먹는다고 배가 차나’.

채식주의자(비건)들이 흔히 듣는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 뉴욕에서 비건 음식을 경험한다면 이런 소리를 함부로 하기 어려워진다. 잠시 비건을 잊자.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떠올려보자. 치킨 피자 탕수육. 무엇을 생각하든 상관없다. 지금 상상한 모든 것이 뉴욕에서는 비건 음식으로 맛볼 수 있다.

뉴욕 맨해튼 로어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더트캔디’. 허름한 건물의 1층에 자리잡은 식당이다. 겉에서만 보면 안에 사람이라도 한 명 있을까 싶은데 실내로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세련되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더트캔드처럼 겉과 속이 다른 ‘반전 식당’은 많이 있다. 하지만 이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비건 코스 요리 식당이라는 점이다.

메뉴는 코스 요리 한 가지. 신선한 제철 채소를 활용해 코스를 구성한다. 코스마다 제공되는 요리의 이름도 따로 없다. 메뉴판엔 그저 요리마다 어떤 재료를 쓰는지 적혀 있을 뿐이다.

지난주 식당을 찾았을 때 식탁 앞에 올려진 코스 요리는 주재료 가운데 하나가 양파였다. 양파로 무엇을 만들까. 양파껍질을 이용해 회(사시미)를 내놨다. ‘양파 사시미’는 3단 트레이의 두 번째 칸에 담겨 있었다. 식감은 아삭했지만 향으로 훈제연어를 먹는 듯한 느낌이 났다. 가장 위 칸에는 해조류로 만든 캐비어, 생선 샐러드(물론 생선은 아니다) 그리고 비건 크림치즈가 나왔다. 캐비어는 실제와 비슷한 식감을 가지면서도 생선알 특유의 비린 맛이 거의 나지 않아 깔끔했다. 가장 아래 칸에는 양파빵이 있었다. 첫 번째 칸의 비건 크림치즈를 곁들여 먹으니 풍미가 살아났다.

비건 요리는 다채로웠다. 애피타이저는 감자와 완두콩으로 조리했다. 얇게 튀겨낸 감자가 부드럽게 입맛을 돋웠다. 음식을 먹다 보니 컬리플라워 샐러드 하며 비트로 만든 치킨, 샐러리로 만든 파스타 등 없는 요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펜넬로 만든 찜, 아스파라거스 무스 등도 나왔다. 펜넬이라는 채소는 처음이었는데 아랫부분은 양파, 윗부분은 파 같은 식감이다. 달큰한 맛이 강했다. 채소만으로 다양한 요리를 음미하면서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경험이었다.

뉴욕에서 비건은 새삼스러운 유행이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62%의 미국인이 환경에 대한 우려로 고기 섭취를 줄이려고 한다고 했다. 970만 명 정도는 자신을 비건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년 전에는 30만 명이었다.

고기를 피하는 비건의 증가세가 정체됐다는 조사도 있긴 하지만 비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코로나19 이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채식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채식 트렌드에서 기회를 찾는 식당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레븐 매디슨 파크’가 대표적이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으로 2017년 ‘월드50 베스트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으로도 선정된 이 식당은 지난해 6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식당을 비건 레스토랑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비건 식단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고 있다. ‘델리스앤드사라신’이라는 식당은 프랑스 가정식을 판매하는데 버섯으로 만든 에스카르고(달팽이요리)가 유명하다. 버섯의 식감과 풍부한 향 모두 훌륭하다. 후식으로 주문한 크레페 역시 바삭하고 촉촉한 맛이 일품이다.

채식이 고급 요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뉴욕의 비건 식당으로 브루클린에 있는 ‘스크리머스 피자리아’를 빼놓을 수 없다. 페페로니부터 치즈 피자까지 다양한 피자를 화덕에 구워서 판매한다. 가격은 1조각에 3.5~4.75달러. 크기가 커서 2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한식당인 ‘한가위’도 뉴욕의 비건 식당으로 유명하다. ‘하하하 멕시카나’는 다양한 비건 타코를 맛볼 수 있는 멕시칸 음식점이다. ‘플랜타 퀸’은 군만두에서 파인애플 볶음밥, 비트 타르타르까지 아시안 퓨전 음식을 판매한다. 이름부터 독특한 ‘부처스도터’는 브런치 전문점이다.

뉴욕=강영연 특파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