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큰 강남·관악 위주 설치…구룡마을 이재민들은 대부분 고령층
연일 내리는 비로 복구 지연돼 언제 집에 돌아갈지도 막막
[중부 집중호우] "살아 나왔지만 집 걱정뿐"…이재민들 한숨
"살아 나오긴 했는데 집이 걱정이죠. 이렇게 심한 수해는 없었어요.

"
10일 오후 찾은 강남구 구룡중학교 2층 체육관 대피소에는 판자촌인 구룡마을 이재민 100여 명이 암담한 얼굴로 여기저기 걸터앉아 있었다.

대피소에는 막사 69개와 임시 매트리스가 설치됐고, 남녀용 긴급구호키트가 제공됐다.

키트에는 수건, 체육복, 면도기, 세면도구, 휴지 등이 담겼다.

의무실과 휴대전화 충전 공간도 마련됐지만 마음 편히 이용하는 주민은 없었다.

막사 안쪽에는 다급하게 몸을 피하고 쪽잠을 자느라 지친 표정이 역력한 주민들이 쉬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부분 제대로 짐도 챙기지 못하고 나온 상태에, 60대 이상 고령이 많았다.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걷던 할머니는 그래도 "여기에서나마 몸을 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재민 중 최고령인 김순연(93)씨는 "1988년에 구룡마을에 들어와 살았다.

자다가 물이 들어차 너무 놀랐다.

딸과 같이 두 시간 물을 퍼내다 도저히 안 되어서 입은 옷 그대로 피신했다"며 "아무것도 못 챙겼다.

혈압약도 사흘째 못 먹었다"고 말했다.

김선옥(87)씨도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다.

물이 가슴 바로 아래까지 찼는데 구조대원이 들어와 업어서 빠져나왔다"며 "구룡마을 좀 구해달라. 매번 불난리 물난리다"라고 호소했다.

이태원(69)씨는 "물을 퍼내다 지쳐 삶을 포기할 뻔했는데 하늘에서 잠시 봐줬는지 오늘은 비가 멈췄다"며 "30년 이곳에 살면서 많은 수해를 경험했지만 이번처럼 심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재민들은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 데 대한 피로도 드러냈다.

60대 김모 씨는 "정신적 충격이 크고 분노도 있다.

아무리 자연재해라지만 구룡마을 사람들도 국민이다.

대책을 좀 마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룡마을자치회장 이영만(61)씨는 "어르신들 건강이 걱정이다.

65%가량이 고령층"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8일 마련된 이곳은 14일까지만 운영하고 문을 닫을 예정인 가운데 그때까지 집이 복구되지 않은 주민들은 위례 임대아파트에 머물게 된다.

오후 3시께에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들러 이재민들의 고충을 들었다.

[중부 집중호우] "살아 나왔지만 집 걱정뿐"…이재민들 한숨
같은 시각 이재민 120명이 머무르고 있는 동작구 사당종합체육관에도 한숨만 가득했다.

처음에는 온돌이 구비된 유아체육실만 대피소로 썼지만 인원이 늘면서 체육관까지 쓰고 있다.

개인별, 가구별 칸막이는 없는 상황이고 이재민들은 보급된 얇은 매트만 깔고 바닥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로비에는 대기업과 구호단체에서 보낸 식량 등 물품이 쌓여 있었지만 이재민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앉아있기만 했다.

또 긴박한 상황에서 짐을 챙길 여유조차 없었는지 대부분 가진 짐도 한 박스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축대가 무너진 인근 아파트 주민 류모(63)씨는 "담이 심하게 무너져 아파트까지 손상돼 복구가 언제 될지 모른다.

속상하다"며 "이전에도 그런 부분이 걱정돼 구청에 민원했지만 반영이 안 됐다.

이번을 계기로 다시 공사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류씨는 "아내와 아들이 토사가 1층을 치면서 벽이 흔들려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나도 무서워서 집에서 못 자겠더라. 벽을 보니 금도 가 있더라"고 덧붙였다.

해당 아파트 다른 주민도 "집이 단전, 단수 상황이다.

인근 호텔에 가보려 했는데 다 만실이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했고, 주민 강모(61)씨도 "당뇨약과 심장약을 먹어야 하는데 올라가질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서울에 대피소가 설치된 건 2018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강남, 서초, 관악, 동작, 영등포, 구로, 양천구에 대피소가 설치돼 약 700명의 이재민이 피신해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