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 건축문화 투영된 100년 이상 근대 건축물 즐비
인천항 앞 개항장 거리를 걷다 보면 100년 이상 된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근대 건축물은 부산·군산·목포 등 다른 지역에도 여럿 있지만, 인천 개항장은 다른 곳과는 명확하게 차별적인 특색을 지닌다.

다른 도시들은 일반적으로 일본식 건물이 주를 이루지만, 인천 개항장은 일본식 건물뿐 아니라 중국과 서양식 근대 건축물도 공존한다.

이는 인천 개항장이 19세기 말 국내에서 유일하게 서방 국가를 포함한 각국 조계지(외국인 거주지)가 조성된 국내 최초의 국제도시였기 때문이다.

◇ 외국인 거주 각국 조계지 설정…다양한 건축문화 도입
1883년 인천항이 강제로 열리면서 항구 앞 개항장에는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는 각국의 '조계지(租界地)'가 설정됐다.

인천은 1876년 부산, 1880년 원산에 이어 1883년 세 번째로 개항했지만, 수도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외국 상인·무역상·선교사들의 왕래가 더욱 잦은 곳이었다.

이에 따라 조선은 지금의 중구청 인근 지역을 외국인 거주지로 내주는 조계 계약을 열강들과 맺게 된다.

일본 조계가 1883년 가장 먼저 설정됐고, 이듬해 청국 조계와 서양 각국 조계 설정이 뒤따랐다.

인천 개항장 조계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국·영국·독일 등 서양 국가 조계도 설정된 곳이다.

조계 경계를 설정한 뒤 직선 도로와 블록별 구역을 구분하고 건축물 용도와 형태 등이 규제되면서 인천 개항장은 국내 최초로 서구식 단지 조성계획 기법을 적용받는 곳이 됐다.

이곳의 가옥은 규정에 따라 벽돌·석재·철재로 견고하게 지어야 하고, 옥상에는 기와 또는 철을 사용해야 했다.

목조 건물과 초가집은 허가하지 않았지만, 일본 조계에서는 예외적으로 목조 건물이 허용되기도 했다.

각국 조계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이후 1914년 인천부 관할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면서 사라지게 됐지만, 이후에도 건축기술 발달에 따라 근대 건축물 건립은 지속해서 이뤄졌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는 "각국의 건축문화가 투영된 건물들이 잇따라 건립됐고 지금도 적잖은 건물이 보존된 것은 인천 개항장만의 특징"이라며 "우리나라 현대 건축문화를 형성하는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다만 강제 개항 후 이들 건물은 우리 힘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시대적 상황도 인식하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비극이 일어난 곳에서 반성과 교훈을 얻는 '다크 투어리즘'의 성격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옛 일본은행에 들어선 근대건축전시관…당시 경관 한눈에
인천 개항장에 남겨진 건축자산은 우리나라 근대도시 건축의 역사를 집약할 수 있는 중요한 시발점 기능을 한다.

특히 인천 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중구 신포로 23번길 77)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공법과 역사를 지닌 개항장 일대 건축물 관련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100년 이상의 세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근대 건축물들과 이제는 소실되고 없어진 건축물들의 자료와 모형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근대건축전시관 건물 자체도 건립된 지 132년 된 인천시 유형문화재이기도 하다.

1890년 10월 일본 제18은행 인천지점 건물로 준공된 이 건물은 근대기 인천에 들어선 은행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2006년 전시관으로 새롭게 개장한 후 현재까지도 옛 지붕과 금고 출입문이 그대로 남아있어 당시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 100년 전 거리 걷는 기분…소실 건축물 모형도 관람
전시관에서는 개항장 일대에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18개의 건립 배경과 위치 등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인천아트플랫폼 사무동으로 사용 중인 일본 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1888년 건립돼 현존하는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한반도 해운업을 장악하기 위한 일제의 의도가 서린 건물이긴 하지만, 문화재청은 국가문화유산 포털에서 "종교시설이나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 소유의 건물이 이렇게 원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평가한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려한 외관이 눈길을 끄는 답동성당도 1897년 완공 이후 한 세기 넘게 인천 천주교회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

이밖에 개항장에서는 옛 인천우체국, 일본 제1은행 인천지점(인천개항박물관), 일본 제58은행 인천지점(외식업중앙회 사무실) 등 100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건물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전시관에서는 또 존스턴별장, 세창양행 사택, 오례당 저택 등 지금은 없어진 건축물을 축소·재현한 모형 건물도 관람할 수 있다.

근대건축전시관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어린이 무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