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 상대로 소송 내 승소한 채용형 인턴들…줄소송 이어질 듯

[법알못 판례 읽기]
대구혁신도시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본사 전경. 사진=한국가스공사 제공
대구혁신도시에 있는 한국가스공사 본사 전경. 사진=한국가스공사 제공
채용형 인턴에게 고정 상여금과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공공기관 채용형 인턴에 대한 차별을 인정한 첫 사례다.

정규직으로 채용될 확률이 높고 정규직과 거의 똑같은 업무를 해왔기 때문에 상여금과 성과급도 동일하게 지급해야 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 이후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채용형 인턴의 임금 문제로 소송에 휘말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 똑같다면 성과급도 같아야”

대구지방법원 제12민사부(부장판사 채성호)는 2022년 6월 16일 한국가스공사(이하 가스공사)에 채용형 인턴으로 입사한 노동자 280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차별 행위로 인한 손해 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이에 따라 가스공사는 고정 상여금과 인센티브 성과급을 다시 계산해 미지급분을 원고에게 추가로 줘야 할 상황에 놓였다.

이번에 소송을 제기한 가스공사 노동자들은 2016~2018년 채용형 인턴으로 입사했다. 당시 입사했던 채용형 인턴들 중 90% 이상이 인턴 기간(3개월)이 끝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17년 하반기 입사자(90명) 중에선 1명을 제외하곤 모두 정규직이 됐다.

이들은 정규직이 됐음에도 재직 기간 산정 과정에서 인턴 기간이 제외되면서 고정 상여금과 인센티브 성과급을 받지 못했거나 정규직보다 적게 받았다. 가스공사 보수 규정상 정규직은 월 기본급의 300%를 고정 상여금, 250%를 인센티브 성과급(내부 성과급)으로 받도록 돼 있다.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던 정규직이나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채용된 노동자와 비교하면 차별적 처우를 한 것”이라며 “근로기준법 6조와 기간제법 8조를 위반한 불법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 측은 “채용형 인턴들은 정규직 노동자와 똑같거나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며 맞섰다. 가스공사는 “원고가 채용형 인턴으로 근무하던 당시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된 노동자가 없었기 때문에 원고와 정규직 노동자를 비교할 수 없다”며 “정규직 노동자를 비교 대상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채용형 인턴의 취지에 비춰 보면 성과급을 주지 않은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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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노동자까지 비슷한 소송 나설 수도

이번 소송의 쟁점은 채용형 인턴이 상여금과 성과급을 못 받은 것이 법적으로 차별적 처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근로기준법 등에선 비교 대상 노동자와 차별적 처우가 있으면서 차별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없어야 차별적 처우를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일단 가스공사 사례에선 정규직 노동자와 채용형 인턴을 비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회사 측은 “채용형 인턴은 정규직 전환이 보장되지 않았고 이직 활동을 배려받는 등 정규직과는 지위가 다르다”고 했지만 법정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가스공사는 정부의 채용형 인턴 제도 도입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2016년 하반기부터 신입 사원으로 채용할 인원 전부를 채용형 인턴 제도로 선발해 왔다”며 “원고들이 정규직과 똑같거나 비슷한 업무에 종사하지 않았다면 가스공사는 2년여간 업무에 필요한 인력에 일부 공백이 생기는 결과를 만든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채용형 인턴 운영 매뉴얼에 ‘채용형 인턴에게 정규직 수준에 준하는 업무를 부여한다’고 명시돼 있고 채용 공고 지원 자격에도 ‘채용일부터 현업 근무 가능한 자’라고 적혀 있다”고도 했다. 이 같은 근거를 바탕으로 “채용형 인턴 기간에 상응하는 고정 상여금을 주지 않은 것은 법에서 금지하는 ‘불리한 처우’”라는 결론을 내렸다.

채용형 인턴이 받는 처우에 대한 ‘합리적 이유’도 없다고 인정됐다. 재판부는 “가스공사의 상여금 지급 규정을 보면 ‘현재 근무 중일 것’이란 조건만 요구할 뿐 별도 요건을 정하지 않고 있고 채용형 인턴의 정규직 전환율도 90%를 웃돌고 있다”며 “채용형 인턴에게만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인턴으로 근무한 기간을 재직 기간에서 빼 성과급을 산정한 것도 차별적인 처우라고 봤다.

채용형 인턴에 대한 차별을 인정한 첫 판례가 나오면서 앞으로 가스공사와 비슷한 분쟁을 겪는 기업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임금채권(3년)보다 소멸 시효가 훨씬 긴 불법 행위 청구권(10년)을 행사해 노동자 측이 승소했다는 점이 노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선 기간제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수습 노동자 등도 “법에서 금지한 차별적 처우를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형 로펌 변호사는 “최근 법원은 기간제 노동자 등 특정 법에 의해 차별적 처우를 받지 않도록 보호받는 집단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차별 금지 법리를 적용해 보호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며 “나중엔 수습 노동자가 정기 상여금을 받지 못했거나 인센티브 금액을 산정할 때 수습 기간을 근속 기간에 포함하지 않으면 분쟁의 소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돋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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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분쟁 ‘불씨’ 된 차별 문제

산업계에선 갈수록 차별 문제로 인한 노사 갈등이 잦아지는 분위기다. 과거엔 단순히 비정규직 자체에 대한 차별이 화두가 됐다면 이제는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 간 처우, 연령에 따른 처우 등을 둘러싸고도 분쟁이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022년 5월 퇴직자 A 씨가 재직했던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 적용으로 삭감된 급여를 돌려달라”는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정년 유지형’인 A 씨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임금 피크제 적용은 연령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이 판결이 나온 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노동자들이 임금피크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KB국민은행·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 등도 임금피크제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A 씨의 승소 후 임금피크제가 연령 차별인지를 두고 산업계 전반에서 거센 논쟁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3년 전엔 비전업(非專業) 대학 시간 강사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인정한 판결이 나와 법조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019년 3월 안동대 음악과 시간 강사인 A 씨가 낸 시간강사료 반환 처분 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 취지로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 씨는 2014년 2월 전업 강사로서 시간당 8만원으로 매월 8시간씩 강의한다는 계약을 안동대와 체결했다.

하지만 안동대 측은 그해 4월 국민연금이 “A 씨는 부동산 임대 사업자로 별도 수입이 있는 자”라고 통보했다는 이유를 들어 A 씨를 시간당 3만원을 받는 비전업 시간 강사로 분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A 씨에게 그동안 전업 강사로 분류돼 받았던 급여 40만원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소송을 제기했고 약 5년간의 법정 싸움 끝에 차별 대우를 받았음을 인정받았다.

같은 해 12월엔 무기 계약직의 임금 등을 정규직과 차별해선 안 된다는 판결도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대전MBC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다가 2010~2011년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된 노동자 7명이 낸 소송에서 “정규직과 같은 취업 규칙을 적용하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정규직보다 덜 줬던 임금과 수당, 복리 후생비 등을 지급하라는 의미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