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인천서 성냥 제조 시작…옛 공장터에 성냥박물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 척(톰 행크스)이 불을 얻는 과정은 절박함을 넘어 처절하다.

무인도에서 어렵사리 포획한 생선과 게를 날것으로 먹을 수 없던 척은 나무의 마찰력으로 불을 만들어 보려 밤낮으로 나무판에 막대기를 긁어대지만, 오히려 손에 큰 상처만 입게 되자 절규하며 울부짖는다.

피 묻은 손으로 던져버린 배구공은 우연히 새 친구 '윌슨'이 됐고, 척은 다시 불을 피우려 구슬땀을 뚝뚝 흘리며 나무판을 비벼대다가 윌슨에게 농담 삼아 한마디 던진다.

"혹시 성냥 가지고 있진 않겠지?"
이어 포기하지 않고 나무판을 긁던 중 불꽃이 기적처럼 타올랐고, 불을 '창조'하게 된 척은 환희와 희열에 벅차 노래하고 춤추며 모처럼 문명인으로서의 생활을 만끽하게 된다.

◇ 부싯돌 없이도 편하게 불을 소유하다…성냥의 혁명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그토록 절실했던 성냥은 인류에게 불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소유할 수 있게 해 준 혁명적 신문물이었다.

1827년 영국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성냥은 국내에서는 1880년 범어사 출신 승려 이동인이 일본에 갔다가 귀국할 때 처음 들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1886년 제물포에 들어선 세창양행 무역상사가 성냥을 수입해 팔았고, 1917년 10월에는 국내 최초의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가 인천시 동구 금곡동에서 문을 열었다.

조선인촌회사는 신의주와 평양에 지점을 내고 전국으로 판로를 개척하며 일제강점기 대표 성냥공장으로 자리 잡았다.

1930년대 후반에는 공장 직공이 800명, 부업 종사자가 2천800명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확대됐다.

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성냥은 부시로 돌을 쳐 불씨를 살리는 전근대를 졸업하게 만든 신문물"이라며 "예부터 불은 임금이 백성에게 나눠주는 귀물이었는데,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제 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반만년 생활사에 혁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 국내 첫 성냥공장 조선인촌…주축은 10대 여공
성냥공장의 노동자들은 주로 10대 여공들이었다.

저임금에도 하루 13시간을 일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묵묵히 일했다.

한때 군대에서는 성냥공장 여공들을 저속하게 표현한 노래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가 널리 불리기도 했지만, 이들은 1920년대 초부터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파업을 벌이는 등 노동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주역들이기도 하다.

1921년 3월 지배인 교체를 요구하는 동맹파업, 1926년 4월 인천인공(燐工)동맹 연대파업, 1932년 5월 임금 인상과 8시간 노동제 요구 동맹파업이 모두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이뤄졌다.

비록 당국의 강력한 탄압으로 파업이 노동자의 승리로 이어지진 않았어도 이들의 투쟁은 인천 여성 노동운동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해방 이후 적산기업으로 분류된 조선인촌주식회사는 1960년대 폐업의 길을 걷게 되지만, 전국 다른 성냥공장들은 명맥을 이어가며 생산을 지속했다.

◇ 집들이·개업 선물로 인기…라이터 등장에 내리막길
성냥은 1960∼70년대에는 '가운(家運)이나 사업이 불처럼 일어나라'는 의미에서 집들이와 개업 선물로 인기를 끌었다.

광고 매체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다 보니 극장·식당·다방 등 업소 홍보용 성냥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생활 속 필수품이던 성냥은 1970년대 말 일회용 라이터가 등장하면서 점차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라이터 사용 확대로 성냥 수요가 급감하자 1984년 7월에는 성냥조합이 창립 20년 만에 해산했고, 2017년 '기린표' 성냥 제조사 경남산업공사 폐업을 끝으로 국내에서는 성냥공장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래도 양초나 향에 라이터보다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싶어 하는 레트로 감성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아 온라인에서는 지금도 중국산 성냥이 계속 판매되고 있다.

◇ 첫 성냥공장 터에는 성냥박물관…성냥과의 추억 간직
성냥공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국내 첫 성냥공장인 조선인촌주식회사 터에는 성냥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인천시·동구청은 2019년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그해 3월 동구 금곡로 19 옛 동인천우체국 건물에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을 개관했다.

박물관에는 성냥 역사와 제작 과정, 성냥으로 인한 생활 변화상 등을 담은 자료, 각양각색의 성냥 등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 공간은 지상 1층, 110㎡ 남짓해 박물관 전체를 관람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멀리서 일부러 찾아갔다면 근처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도 함께 관람하며 1960∼70년대 서민의 생활상을 둘러보는 것도 권할 만하다.

또 성냥박물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떨어진 개항로 상가에서는 인천 수제 맥주 '개항로', 면 요리인 '개항면', 옛날 조리 방식의 '개항로 통닭' 등을 맛보며 인천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다.

성냥박물관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