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국은행이 공격적인 기준금리에 나섰습니다. 지난 13일에는 한은 역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4년 이후 8년 만에 기준금리를 연 2.25%로 올랐는데요. 1년도 안 돼 기준금리가 1.75%포인트 인상된 것입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발맞추기 위해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금리를 인상해도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에 따른 공급 측면의 문제이기 때문에 수요를 억제하는 금리 인상과 같은 전통적인 통화 정책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얘깁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이 물가는 잡지 못하고 경기 침체만 초래할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입니다.

지난 18일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이런 주장에 사실상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공개했습니다. 홍 국장은 이날 한은 홈페이지 블로그를 통해 '금리를 인상하면 공급 병목이 해소되고 원자재 가격이 떨어지느냐'는 질문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며 글을 시작했습니다. 홍 국장은 이런 질문에 대해 "원유, 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의구심"이라고 했습니다.

홍 국장은 우선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유가가 한 차례 급등했다고 가정했습니다. 유가 오르면 물가상승률이 높아지고 실질소득은 줄어들게 됩니다.

이럴 때 세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모든 경제주체가 국제유가 급등을 산유국에 지불하는 세금(tax)으로 간주할 경우입니다. 이는 모든 경제주체가 물가가 올랐을 때 물가 상승이 당연하며, 이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 걸 의미합니다.

이상적인 가정이지만, 이 경우 기업은 비용 상승에 제품 가격을 올리기보다 생산성 제고로 대응할 것입니다. 가계 역시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를 받아들일 것입니다. 홍 국장은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일시적 물가상승과 소득감소가 경제에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경제주체들은 새로운 균형에서 다시 생산과 총소득을 증대시켜 나갈 것"이라며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안정돼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인플레이션이 나타났지만,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으로 대처하지 않거나 늦은 경우입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 상승으로 임금 상승 요구와 기대 인플레이션까지 높아지게 됩니다. 홍 국장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상이 된다"며 "중앙은행이 물가·임금·기대 간 상호작용, 즉 공급충격의 2차 효과에 대한 대응에 실기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가속되면서 향후 물가 안정을 위해 더 큰 폭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되면 경기 둔화 폭이 커지면서 총소득도 처음 국제유가 급등에 의해 줄어든 수준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급이 문제인데 왜 금리를 인상?"…한은 국장의 반박 [조미현의 BOK 워치]
세 번째로 중앙은행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경우입니다. 홍 국장은 "실질소득이 줄어들겠지만, 그 정도는 (두 번째 경우보다) 상당히 축소될 것"이라며 "더욱이 물가가 조기에 안정되는 만큼 경제가 이후 다시 빠르게 성장 궤도로 재진입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홍 국장은 "공급 충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경제 전체가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코로나19 팬데믹,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과 같은 외부의 충격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상황에서 제품 가격과 임금 인상이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고(高)물가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홍 국장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렇게 해야 단기적 손실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고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제정책은 공급제약 완화와 서민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인플레이션 및 금리상승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방안일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는 그 피해가 저소득 취약계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라고 조언했습니다.

홍 국장은 "공급충격과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가정들을 통해 현실 상황을 단순화했다"며 "실제 통화정책 운용은 수요 측 물가 압력, 성장,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 주요국 통화정책 영향에 따른 환율 및 자본 유출입 움직임 등 다양한 요인들도 함께 고려하여 이뤄진다는 점도 밝혀둔다"고 글 말미에 덧붙였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