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베르디 레퀴엠' 끝으로 임기 종료…"관객 사랑 잊지 못할 것"

19일 오후 경기 수원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진행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베르디 레퀴엠' 리허설 현장.
경기필 지휘봉 내려놓는 마시모 자네티 "지난 4년, 마법 같았다"
무대 위 단상에 선 마시모 자네티(60) 경기필 상임 지휘자는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쉴새 없이 지휘봉을 움직였다.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부드럽게 허공을 가르는 그의 손짓에 맞춰 수십 명의 단원이 웅장한 화음을 만들어냈다.

오는 23일과 25일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각각 진행되는 이 공연을 끝으로 자네티는 경기필에서의 4년 임기를 마친다.

자네티는 리허설 직후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그동안 경기필 단원들과 함께한 시간은 곧 '우리만의 새로운 연주 방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소회를 밝혔다.

그는 "경기필 상임 지휘자로서 매 공연 모든 걸 쏟아부었다"며 "특히 단원들과 많은 의견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하며 연주할 수 있게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인 자네티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유럽 정상급 악단에서 오페라 지휘로 명성을 쌓았다.

2018년 9월 경기필의 첫 외국인 상임 지휘자로 선임된 이후 임기를 연장해 올해까지 경기필을 이끌어왔다.

자네티는 경기필을 이끌며 베토벤과 슈만의 작품을 연주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그는 "베토벤의 콰르텟과 슈만의 작품은 모두 고난도의 테크닉이 요구됨에도 경기필이 무척 잘 연주해줬다고 생각한다"며 "해당 공연 이후 많은 관객이 '처음 들어보는 방식의 연주'라며 호평했다"고 했다.

이날 자리를 함께한 정하나 경기필 악장도 "자네티가 오페라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어 단원들에게 대단한 영감을 줬다"고 강조했다.

경기필 지휘봉 내려놓는 마시모 자네티 "지난 4년, 마법 같았다"
다만, 자네티는 2년 넘게 지속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관객들에게 더 많은 작품을 들려주지 못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말러 교향곡과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 등 경기필 관객분들께 들려드리고 싶었던 연주가 많았으나 제대로 공연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무척 아쉽다"며 "경기필에서 다시 연주할 기회가 생긴다면 단원들과 더 많은 작품을 함께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경기필에서의 마지막 무대인 '레퀴엠'도 당초 2020년 3월 공연하기로 예정돼있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올해로 연기된 것이다.

이 곡은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종교음악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으로, 오페라의 극적인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어 '망자의 오페라'로도 불린다.

베르디가 낭만주의의 거장인 음악가 로시니와 만초니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완성했다.

자네티는 "슬픈 곡으로 임기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면서도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 유럽에서 이어지고 있는 전쟁, 기후 변화와 가뭄 등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공연을 마친 뒤엔 당분간 휴식기를 가지며 다음 행보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리허설과 공연으로 인해 제대로 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끼던 단원들을 떠나게 된 데 따르는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그동안 함께했던 한국 관객에게도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경기필을 지휘하는 기간 내내 관객 여러분께서 주셨던 사랑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시간을 영원히 기억할게요.

앞으로도 경기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