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왼쪽)가 한·미 FTA 10주년 대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서기열  특파원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왼쪽)가 한·미 FTA 10주년 대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서기열 특파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성공하려면 ‘윈윈’이 돼야 했습니다. 하지만 협상 중에 ‘루즈-루즈’라고 느낀 순간이 여러 번 있었고 협상을 관두고 싶었습니다.”(웬디 커틀러 전 미국 무역대표부 부대표)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인내했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서로 신뢰할 수 있는 협상 파트너를 만났던 건 참 운이 좋았던 거죠.”(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한·미 FTA가 발효된 지 10년 만인 올해 당시 협상 대표인 두 사람이 만났다. 이 둘은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지만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였다고 회상했다. 향후에도 한·미 양국이 더 공고한 파트너십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김종훈 전 본부장과 커틀러 전 부대표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팰리스호텔에서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와 주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함께 주최한 한·미 FTA 10주년 대담에 참석했다. 한·미 FTA는 2006년 6월 양국 정부가 협상을 개시한 뒤 2012년 3월 발효될 때까지 거의 6년 가까이 걸린 긴 협상이었다.

김 전 본부장은 “많은 이해 관계자의 입장이 충돌하면서 대규모 반대 시위도 있었지만 우리 둘은 협상에 정말 최선을 다했다”며 “서울과 워싱턴의 시차를 생각하면 둘은 밤낮으로 일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영화 스크린쿼터 폐지와 소고기 수입 개방 문제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두 나라 정부가 시장을 여는 협상에는 농업, 자동차, 금융, 투자, 노동, 섬유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았다”며 “주고받는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양국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미국에선 특히 자동차업계의 반발이 컸다. 한국 자동차가 물밀듯 들어와 미국 자동차업계를 고사시킬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기존 부시 행정부 때 합의안을 보완하기 위한 추가 협상을 2010년 시작했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이미 합의된 안이 있는데도 한국에 다시 더 많은 걸 요구해야 했던 그때가 아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둘은 1 대 1 협상을 통해서 이견을 좁혀가며 최종 합의문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한·미 FTA를 ‘윈윈 협정’이라고 평가했다. 김 전 본부장은 “스크린쿼터를 유지하기 전보다 한국 영화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발전했다”며 “개방 이후 경쟁력은 더 커졌고 오징어 게임 등 전 세계에 통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양국의 상품무역 규모는 한·미 FTA 발효 전 1008억달러(2010년)에서 지난해 1691억달러로 약 10년 만에 67.8% 증가했다.

두 사람은 현재 글로벌 공급망 문제도 양국이 공고한 파트너십 위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커틀러 전 부대표는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라며 “공급망 문제도 한·미 양국이 공조를 통해 해결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샌프란시스코=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