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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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비도 너무 올랐는데, 당장 오는 9월부터 대출원리금까지 월 100만원 가까이 더 내야 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30대 직장인 A씨의 하소연입니다.

2017년만 해도 A씨의 상황은 전혀 달랐습니다. 높은 경쟁률에 기대도 못했는데, 청약에 당첨된 것이죠. 서울 도심에 내 집을 마련하게 됐다는 기쁨도 잠시. 모아 놓은 자금만으로는 중도금과 잔금을 충당하기에 부족했죠.

시기적으로 정부의 가계부채 규제 정책이 강화되기 직전이라 무사히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택담보대출만으로 부족한 자금은 다른 시중은행에서 신용대출로 채웠고요. 신용대출은 1년씩 만기를 연장하고 있는데, 연장 때마다 대출 금리는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올 들어선 주택담보대출 금리마저 A씨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A씨는 5년 거치 후 변동 금리가 적용되는 방식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본격화했는데도 크게 시장 금리를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5년 거치가 끝난 올 하반기부터 A씨에게도 금리 인상 후폭풍이 현실화한 것이죠. A씨는 "지금까지 연 3%대 중반 금리로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는데, 오는 9월부턴 갑자기 연 5%대로 금리가 뛴다"며 "신용대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갑자기 확 커져 월급만으로 어떻게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답니다.

비단 A씨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를 보면 '사실상 내 집 마련을 포기했다'는 실수요자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아무리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강조해도 이젠 대출 금리 부담 탓에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행은 지난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올 연말까지 세 차례 금리 결정 회의가 있는데, 두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이란 시장의 전망이 많습니다. 지난해 7월만 해도 연 0.50%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연 2.25%까지 올랐습니다. 올 연말엔 연 3%에 이를 것이라는 게 시장의 중론입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시중은행들이 공급하는 신용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역시 높아지게 됩니다. 시중은행들이 붙이는 각종 비용을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상 속도보다 통상 대출 금리 인상 속도가 더 가파르답니다. 결국 실수요자들은 단기간에 급등한 금리를 오롯이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한동안 집 값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높은 이자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출로 무리하게 집을 사려는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며 "실수요자들의 깊은 거래 관망 속에 저조한 주택 거래 등이 맞물려 부동산 시장의 약세장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셋값의 절대적인 수준 역시 높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올 6월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6억원대 중후반입니다. 최근 1년 새 1억5000만원 이상 오른 수준이죠. 이렇게 전셋값도 부담스러워지자 결국 세입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증금의 일부를 월세로 돌리고 있습니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셋값 자체도 높은 데다 최근 각종 대출 금리까지 오르면서 갖고 있는 자금에 맞춰 월세를 고려하는 세입자들이 많다"고 전했습니다. 시중은행의 전세 대출 금리는 연 5%대까지 높아졌습니다. 전세를 월세로 바꿀 때 적용하는 비율인 전·월세 전환율(연 3.19%·올 5월 서울 아파트 기준)보다 높죠. 세입자 입장에서도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보증금 1억원을 대출받을 때 내는 연 이자(500만원)가 같은 액수의 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때의 지출(319만원)보다 많아진 상태이니깐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1~5월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51.9%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41.9%였죠. 1년 새 10%포인트 급등한 겁니다. 결코 적지 않은 차이죠. 특히 서울은 같은 기간 44.7%에서 53.2%로 높아졌습니다. 전세 수요가 가장 많은 서울 주택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얘기랍니다.

한국은행 빅스텝 이후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는 한층 더 빨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올 들어 5월까지 전국 임대차 계약 10건 중 5건이 월세로 거래됐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이렇게 월세 수요가 늘다 보니 월세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5월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25만6000원으로 1년 전(113만7000원)보다 10.5% 상승했답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