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명보 보도…"총서기·주석직 마친 뒤 공직 떠나도 최후결정권자"
시진핑 '인민영수' 칭호로 덩샤오핑식 종신1인자 길 트나(종합2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가을 제20차 당 대회(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당 총서기직 연임을 확정지으며 '인민영수' 칭호를 얻게 될 것이라고 홍콩 유력지인 명보가 12일 보도했다.

이는 공직을 후계자에게 넘기고 물러난 뒤로도 사망 때까지 막후에서 사실상의 최종 결정권자 역할을 했던 덩샤오핑(1904∼1997)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명보는 분석했다.

◇ '인민영수' 칭호로 총서기·국가주석직 물러나도 최대 영향력"
명보는 복수의 베이징 익명 소식통을 인용해 시 주석이 현재 보유한 '당의 핵심', '군대 총사령관'에 이어 '인민영수' 칭호를 얻게 될 것이며, 이를 뒷받침할 선전 문구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정당, 한 명의 영수가 지극히 중요하다'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명보의 취재에 응한 중국 정치학자 천다오인은 '핵심'이나 '영수'는 '무관의 왕'과 유사하다면서 "장래 국가주석과 총서기를 맡지 않아도 영수와 핵심으로서 그가 살아있는 한 영향력은 첫째일 것이며 이는 일종의 무형의 권위"라고 분석했다.

현재 선전 부문에서는 '인민영수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은 인민영수를 사랑한다', '당의 핵심, 인민영수, 군대 총사령관' 등 구호를 이미 점진적으로 전파하고 있다고 명보는 전했다.

다만 시 주석이 20차 당 대회에서 업무보고를 할 때 '인민영수'라는 표현이 바로 등장하진 않을 수 있다고 명보는 전망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 선전 계통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시 주석의 업무보고 내용을 학습하는 단계에서 당국은 '인민영수' 칭호를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진핑 '인민영수' 칭호로 덩샤오핑식 종신1인자 길 트나(종합2보)
또 '영수'에 대한 표준 초상화를 만드는 일도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우선 당국의 묵인하에 민간에서 유행시키는 방식으로 추진하게 될 것이며, 초상화 밑에는 '신시대의 인민영수 시진핑 주석'이라는 문구가 들어갈 것이라고 선전 계통 인사는 전망했다.

◇ 공직서 물러난 뒤로도 '상왕'이었던 덩샤오핑 모델 따라가나
과거 '핵심'이라는 칭호를 만든 덩샤오핑도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등을 맡지 않으면서 평당원 신분으로 사실상 최고 권력자 역할을 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덩샤오핑은 자신의 전임 최고지도자인 마오쩌둥에 대해 '중공 제1대 영도집단의 핵심'으로 표현했고, 자신을 '2대 핵심', 자신의 후임 최고 지도자인 장쩌민을 '3대 핵심'으로 각각 칭했다.

덩샤오핑은 장쩌민이 당·정·군권을 장악한 뒤로도 원로 그룹의 1인자로서 '상왕' 역할을 한동안 맡았다.

개혁·개방의 설계사로 불리는 덩샤오핑은 당과 국가의 공식적 최고위직인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은 한차례도 맡은 적이 없으며, 당 중앙 고문위원회 주임과 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을 맡으며 1인자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당 중앙 고문위 주임(1982년 취임) 자리에서 1987년, 당 중앙군사위 주석(1981년 취임)에서 1989년, 국가 중앙군사위 주석(1983년 취임)에서 1990년 각각 물러났다.

그러나 그후로도 덩샤오핑은 1992년 평당원 신분으로 남순강화(南巡講話·개혁개방 전초기지 격인 남부 지역 도시를 돌며 한 발언)를 하며 개혁·개방 지속 방침을 이끌어낸 것을 포함, 사실상의 막후 최고 실력자 역할을 한동안 지속했다.

시 주석이 '인민영수' 칭호를 얻으면 덩샤오핑처럼 현직에서 물러나 당과 국가의 공식 직책이 없는 상황에서도 당과 국가 사무에 최후 결정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명보에 소개된 한 익명의 정치학자가 예상했다.

◇ 시=영수 움직임 5년전부터…마오 이은 사실상의 2번째 '영수'되면 '1인 체제' 굳히기
시 주석에 대한 '영수' 칭호 부여의 조짐은 약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 10월 18대 6중전회(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 때 시 주석이 당 '핵심' 지위를 확보한 후 이듬해 7월 네이멍구(內蒙古) 훈련 기지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당시 중앙군사위 부주석이었던 판창룽이 전군에 '영수의 당부와 총사령관의 호령을 굳게 기억하자'고 요구하면서 '영수' 칭호가 등장했다고 명보는 전했다.

이어 2017년 10월 시 주석 친위그룹의 핵심인사인 차이치 베이징시 당 서기가 시 주석을 향해 "영명한 영수"라는 표현을 썼고, 작년 11월 6중전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 명분을 담은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중국공산당 중앙의 결의)가 채택된 뒤 '인민영수'라는 표현이 점점 당내에서 확산했다.

올해 들어 잇달아 개최된 지역별 당 대회에서 산시(山西), 허난, 광시, 구이저우 등 4곳의 업무 보고서 제목에 시 주석의 이름은 명기하지 않은 채 '영수의 당부를 명심하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중국 공산당 역사상 마오쩌둥(1893∼1976)이 '위대한 영수'의 칭호를 얻었고, 마오 사망 후 국가주석직을 이어받은 화궈펑(1921∼2008)도 한차례 공식적으로 '영명한 영수'로 불린 적이 있지만 그 호칭을 누린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명보는 전했다.

◇ "시, 2032년 후계자에게 공식 직책 넘긴 뒤 막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
2012년 제18차 당 대회에서 당 총서기가 된 시 주석은 올해 가을 20차 당 대회에서 3연임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럴 경우 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 시대에 정착한 '10년 집권'을 넘어서는 장기 집권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명보가 인용한 베이징 정가의 한 관측통은 모든 당·정 계통 권력기구가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밑바탕을 깔아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군 출신의 다른 인사는 무력 조직(통상 군과 무장경찰을 통칭) 내부에는 시 주석이 중국을 이끄는 동안 대만 문제를 해결(통일)하기를 희망하는 고도의 공동 인식이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양안 통일을 실현하면 인민영수 칭호가 명실상부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보 보도대로 시 주석이 가을 당 대회에서 3연임을 확정하고 '인민영수' 칭호를 얻을 경우 덩샤오핑이 만들어 놓은 1인 권력 집중 방지 장치를 돌파하며 마오쩌둥의 반열에 오르는 시도를 하게 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즉 덩샤오핑이 만든 '격대지정'(한 시기의 지도부가 물러나기 전 차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를 미리 정해 놓는 것), 집단 지도체제 등을 돌파하게 될 것이란 얘기다.

정치학자 천다오인은 "20차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의 연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인데 (2027년) 21차 당 대회의 관문을 넘어서기만 하면 그 이후로는 계속 가게 되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장 빠르면 21차 당 대회 때 시 주석의 후계자가 등장하고, 시 주석은 2032년 22차 당 대회 때 공식 직책에서 물러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지만 물러나더라도 '국가의 영수', '당의 핵심'으로서 과거의 덩샤오핑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천씨는 내다봤다.

천씨는 '영수'와 '핵심' 칭호가 시 주석의 퇴임 이후를 대비해 마련한 것인지 여부에 대해 "아직 판단하긴 이르다"면서도 시 주석이 국가 관료 체제 내부의 직위에 있지 않더라도 두 칭호 하에서 최후 결정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인민영수' 칭호로 덩샤오핑식 종신1인자 길 트나(종합2보)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