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떡볶이 밀키트를 샀거든. 그런데 조리법이 한국어로 적혀 있네. 영어로 번역해줄 수 있을까?”

번역가 안톤 허(허정범·사진)는 지난해 영국인 친구로부터 이런 연락을 받았다. 백세희 작가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영미판 번역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허씨는 12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런던에서 떡볶이 밀키트를 구할 수 있다면 말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 떡볶이를 ‘tteokbokki’로 번역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올해 세계 3대 문학상인 부커상 인터내셔널부문 후보에 오른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대도시의 사랑법》을 번역한 인물. 그는 《대도시의 사랑법》에선 회를 ‘sushi’가 아니라 ‘hwe’로 번역했고 반찬은 발음 그대로 ‘banchan’으로 적었다. 그는 “해외 편집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걸 실감한다”며 “앞서 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등 국내 문학인들의 기여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리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영국 출판사 블룸스버리는 최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영미판을 출간했다. 영미판 제목은 ‘I want to die but I want to eat tteokbokki’다.

이 책은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저자가 기분부전장애를 겪으며 정신과 전문의와 12주간 대화한 내용을 엮은 책이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가도 떡볶이를 먹으면 잠시 기분이 나아지는,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심리 상태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2018년 출간 후 국내에 에세이 열풍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서도 10만 부 넘게 팔렸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한국 저자의 자기고백적 에세이가 해외에서도 인기를 끄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 책의 영미판 판권 수출 계약을 이끈 BC에이전시의 홍순철 대표는 “국내외 출판시장에서 공통적으로 개인의 질병 서사 등 ‘내러티브 논픽션’이 주목받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며 “K푸드 등 해외에서 한국 문화가 주목받으면서 국내 저자의 책을 소개할 기회가 늘고 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도 이 책을 해외에 알리는 데 한몫했다. 리더 RM이 침대에 이 책을 놓아둔 게 영상을 통해 우연히 공개되면서 ‘BTS가 읽는 책’으로 입소문을 탔다. 블룸스버리는 홈페이지를 통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BTS가 읽은 책’으로 홍보하고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