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쓴 작품 속으로 빨려든 2000년대 유명 인터넷소설 작가 이야기
지금은 웹소설이라는 표현이 보편적이지만, 과거에는 인터넷소설이 더 익숙한 단어였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학생들은 PMP(휴대용 동영상 플레이어)에 인터넷소설을 내려받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교실이나 불 꺼진 방에서 남몰래 읽었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귀여니'(본명 이윤세)의 작품들이었다.

귀여니가 쓴 평범한 여학생과 잘나가는 남학생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클리셰(Cliché·판에 박힌 듯한 진부한 표현이나 문구) 범벅이었지만,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래서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웹툰 '그때 우리가 조아한'은 귀여니로 대표되는 20년 전 인터넷소설 시대를 다시 우리 눈앞에 불러온다.

주인공 최아란은 등단한 소설가이자 출판사 대표로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충만한 인물이지만, 사실 고교 시절 유명 인터넷소설 작가인 '조아한'이었다는 비밀을 숨기고 있다.

남자친구와의 파혼, 재혼가정의 어색한 분위기 등으로 아란이 자신의 삶은 최악이라고 느끼던 중 자신이 예전에 썼던 인터넷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말끝마다 이모티콘이 난무하고, 공고와 상고 학생들이 패싸움을 벌이며 우정과 사랑이 전부인 세계.
처음에는 아란도 인터넷소설의 클리셰에 저항하려고 하지만, 정해진 대사를 들어야지만 현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남자주인공 강휘영과 서사를 쌓아 현실로 빠져나온다.

이후 현실에서 힘들 때마다 다시 소설 속으로 돌아가게 되고, 아란은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나가게 된다.

공고와 상고 '싸움짱'이 동시에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등 그 시절 인터넷소설이라면 빼놓지 않고 등장했던 얼토당토않던 설정들부터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없어질 것 같은 대사까지 다시 보는 맛이 쏠쏠하다.

또 단축번호마다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폴더폰, 사귄 지 22일이 되면 친구들이 200원씩 주던 '투투' 등도 2000년대 초반의 기억을 되살린다.

사실 아란은 동생이 사고로 죽고 부모님은 이혼해 가장 힘든 시기에 인터넷소설을 썼다.

자신에게는 없는 단란한 부모님과 천방지축 동생,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단짝 등을 모두 소설 속에 그려 넣었다.

인터넷소설은 여고생 아란이 쉴 수 있는 도피처였고, 세월이 지나 다시 삶이 고통스러워졌을 때 그녀 앞에 나타났다.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입시를 앞두고 짓눌리던 학창 시절에 우리를 달래주던 말도 안 되는 인터넷소설이 웹툰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30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삶이 버겁다면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이 이야기가 다시금 우리의 도피처가 되어주지 않을까.

이 작품은 현재 카카오웹툰에서 연재 중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