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서울대 교수 "허준이, 학부 때부터 빛나던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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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과학부 3·4학년·석사 지도…"필즈상 수상은 국가적 경사"
"허 교수 같은 학생이 좀 더 일찍 발굴됐으면 하는 아쉬움" 허준이(39·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 소식에 그의 학부 과정 일부와 석사 과정을 지도했던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교수는 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필즈상은 노벨상보다 받기 어려운 상으로 (허 교수의 수상은) 수학계뿐만 아니라 한국 자연과학계, 나아가 국가적 경사"라며 "이런 시대를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1983년 미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석사과정까지 모두 한국에서 다녔다.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해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사과정을 밟은 허 교수의 학부 3·4학년과 석사 과정을 지도했다.
김 교수는 그가 학부생 시절부터 수학에 특출난 재능과 열의를 보여 눈에 띄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학부에 막 입학했을 때부터 미적분학 강의 등에서 허 교수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반짝반짝 빛이 나는 굉장히 뛰어난 학생이었다"며 "다른 학생들보다 차분하고 집중력이 강한, 독립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학생들은 불안감이 크기 마련인데, 허 교수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길을 차분하게 개척하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교수들 사이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허 교수가 학부 4학년생이던 당시 서울대에서는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가 초빙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학기 초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몰렸지만, 강의 내용이 어렵다 보니 학기가 끝날 때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학생만 남았다고 한다.
그는 "하루는 히로나카 교수에게 눈에 띄는 학생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있다.
정말 뛰어난 학생이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그게 허 교수길래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허 교수는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주면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독립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강의 뒤에 따로 교수를 찾아와 질문하고 이런 일이 흔하지 않고, 찾아오더라도 괜히 한번 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허 교수는 정말 궁금한 것, 어려운 것을 먼저 다 읽어보고 생각해본 뒤 찾아와 물어보곤 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부 성적이 물리가 안 좋고 수학은 아주 잘했는데, (허 교수가) 학부 3학년 때 '앞으로 수학만 하겠다.
지도교수를 해달라'고 찾아왔었다"며 "대학원 과정에서는 너무 일취월장하니 언젠가 필즈상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허 교수의 재능이 대학에서 꽃피운 것을 두고 교육 시스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허 교수가 어렸을 때는 수학을 못 한다고 느꼈다고 했는데, 히로나카 교수에게도 저에게도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수학적 재능이 아주 뛰어난, 국내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었다"며 "그 같은 학생이 좀 더 일찍 발굴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그가 서울대에 와서는 레벨테스트에서 바로 상위반으로 배정돼 고급수학을 하고, 거기서도 굉장히 잘했다"며 "반복 학습과 안 틀리는 것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수학 평가 방식과 영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에 개선할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허 교수 같은 학생이 좀 더 일찍 발굴됐으면 하는 아쉬움" 허준이(39·June Huh)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 소식에 그의 학부 과정 일부와 석사 과정을 지도했던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기쁨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김 교수는 5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필즈상은 노벨상보다 받기 어려운 상으로 (허 교수의 수상은) 수학계뿐만 아니라 한국 자연과학계, 나아가 국가적 경사"라며 "이런 시대를 사는 것이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1983년 미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한국으로 돌아왔고, 초등학교부터 대학 학부·석사과정까지 모두 한국에서 다녔다.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입학해 서울대 수리과학부 석사과정을 밟은 허 교수의 학부 3·4학년과 석사 과정을 지도했다.
김 교수는 그가 학부생 시절부터 수학에 특출난 재능과 열의를 보여 눈에 띄었다고 회고했다.
김 교수는 "학부에 막 입학했을 때부터 미적분학 강의 등에서 허 교수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반짝반짝 빛이 나는 굉장히 뛰어난 학생이었다"며 "다른 학생들보다 차분하고 집중력이 강한, 독립적인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린 학생들은 불안감이 크기 마련인데, 허 교수는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길을 차분하게 개척하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교수들 사이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허 교수가 학부 4학년생이던 당시 서울대에서는 필즈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가 초빙석좌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학기 초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에는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몰렸지만, 강의 내용이 어렵다 보니 학기가 끝날 때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학생만 남았다고 한다.
그는 "하루는 히로나카 교수에게 눈에 띄는 학생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있다.
정말 뛰어난 학생이다.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그게 허 교수길래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허 교수는 공부의 방향을 제시해주면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독립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강의 뒤에 따로 교수를 찾아와 질문하고 이런 일이 흔하지 않고, 찾아오더라도 괜히 한번 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허 교수는 정말 궁금한 것, 어려운 것을 먼저 다 읽어보고 생각해본 뒤 찾아와 물어보곤 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부 성적이 물리가 안 좋고 수학은 아주 잘했는데, (허 교수가) 학부 3학년 때 '앞으로 수학만 하겠다.
지도교수를 해달라'고 찾아왔었다"며 "대학원 과정에서는 너무 일취월장하니 언젠가 필즈상을 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허 교수의 재능이 대학에서 꽃피운 것을 두고 교육 시스템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허 교수가 어렸을 때는 수학을 못 한다고 느꼈다고 했는데, 히로나카 교수에게도 저에게도 그는 이론의 여지 없이 수학적 재능이 아주 뛰어난, 국내에서 가장 수학을 잘하는 학생이었다"며 "그 같은 학생이 좀 더 일찍 발굴됐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그가 서울대에 와서는 레벨테스트에서 바로 상위반으로 배정돼 고급수학을 하고, 거기서도 굉장히 잘했다"며 "반복 학습과 안 틀리는 것을 강조하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수학 평가 방식과 영재를 발굴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에 개선할 부분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