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위, 성범죄 양형기준 상향…'성적 수치심' 용어 대신 '성적 불쾌감' 사용
피해자 신상 공개나 불이익 보복 등 고려해 형량 가중 '2차 피해' 범위 확대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이나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간, 흉기 등을 이용하거나 2명 이상이 합동해 벌인 특수강간 피고인에 대한 권고 형량이 최대 징역 15년으로 높아진다.

지금까지 법원이 써온 성폭력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는 '성적 불쾌감'으로 바뀐다.

형량 가중 요인이 되는 '2차 피해' 규정을 대폭 넓히고, 군대 내 성폭력에서 상관의 가해 행동 범위도 확대했다.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 전 대법관)는 전날 제117차 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성범죄 수정 양형기준을 심의·의결했다고 5일 밝혔다.

친족관계에서 벌어진 강간,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간, 특수강간의 권고형량은 가중인자가 있는 경우 종전 징역 6∼9년이었으나 이번 수정안에서 징역 7∼10년으로 늘었다.

감경인자가 있는 경우 권고되는 형량도 징역 3년∼5년 6개월에서 6개월이 높아져 징역 3년 6개월∼6년이 됐다.

또 특별가중인자가 특별감경인자보다 2개 이상 많을 정도로 죄질이 나쁜 경우 징역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게 했다.

강제추행죄 권고형량도 1년씩 늘었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제추행이나 특수강제추행은 가중인자가 있을 때 징역 5∼8년이, 주거침입 강제추행은 징역 6∼9년이 권고됐다.

특히 양형위는 주거침입이 동반된 강제추행에서 피고인의 형량 감경 요인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집행유예 없이 실형만을 선고하게 했다.

다만 청소년 강간죄에서 가중인자가 있는 경우 형량 범위는 종전(징역 6∼9년)대로 유지됐고, 감경인자가 있는 경우에는 종전의 3년∼5년 6개월보다 낮아진 2년 6개월∼5년으로 수정됐다.

양형위는 "종전 청소년 강간죄 권고 형량이 청소년 강간으로 인한 치상 범죄와 권고형량범위가 같아 상해가 발생한 범죄와 그렇지 않은 범죄에 같은 형량을 권고하는 불균형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정안에는 성범죄 양형기준의 특별가중인자에서 사용하던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를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양형위는 "성적 수치심이라는 용어가 과거의 정조 관념에 바탕을 두고 있고, 마치 성범죄 피해자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 있어 적절하지 않다"고 수정 배경을 설명했다.

수정안은 또 군대뿐 아니라 체육단체 등 위계질서가 강조되고 지휘·지도·감독·평가 관계로 인해 상급자의 성범죄에 저항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피해자도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로 인정하도록 범위를 확대했다.

지난 회의에서 논의된 '2차 피해' 관련 규정도 다시 손질됐다.

원래 법정에서 '2차 피해'의 의미로 쓰이던 '합의 시도 중 피해 야기'는 앞으로 '2차 피해 야기'로 바뀌고 '합의 시도와 무관하게 피해자에게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가 정의에 포함된다.

양형위는 "피해자의 인적사항 공개나 성범죄 신고에 대한 불이익 조치 등 2차 피해가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했다.

군형법상 성범죄의 특별가중인자 가운데 '상관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경우'도 이번 회의에서 재수정됐다.

원래는 '명시적으로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이라는 정의 규정이 붙어 있었는데 이것으로 인해 양형인자의 범위가 지나치게 협소해진다는 관계기관의 의견이 있어 삭제하기로 했다고 양형위 관계자는 설명했다.

종전까지는 피고인의 나이가 많은 경우 집행유예를 긍정적으로 고려할 일반 참작 사유로 인정했으나 수정안은 이를 삭제했다.

'고령'의 의미가 불명확한 데다 재범 위험성과 피고인 고령 여부의 관련성이 뚜렷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양형위는 이번에 수정한 성범죄 양형기준을 올해 10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