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금·동메달리스트 꺾고 그랜드슬램 우승
아들 위해 온 가족이 이사…"희생으로 성장"
'종주국 일본' 뒤집은 이준환 "내 유도는 지금부터 시작"
6월 25일 한국 유도계에 깜짝 놀랄 소식이 전해졌다.

2002년생 '월드컵둥이' 이준환(20·용인대)은 국제유도연맹(IJF) 2022 울란바토르 그랜드슬램 남자 81㎏급에서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나가세 다카노리(29·일본), 동메달리스트 샤밀 보르하슈빌리(27·오스트리아)를 연거푸 꺾고 우승을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약관의 나이에 아직 팬들에게 이름 조차 생소한 신예의 우승에 국내 유도계뿐 아니라, 세계 유도계도 깜짝 놀랐다.

IJF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준환은 선수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재빠르게 한판승을 따낼 수 있는 선수"라고 표현했다.

일본 매체 스포츠호치는 "올림픽 왕자 나가세가 11개월 만에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며 이준환을 조명하기도 했다.

유도계를 놀라게 하고 귀국한 이준환은 지난달 30일 경기도 안산의 한 카페에 밝은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는 "아직도 얼떨떨하다"라며 "정말 운 좋게 이긴 대회다.

내 유도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며 이야기를 꺼냈다.

'종주국 일본' 뒤집은 이준환 "내 유도는 지금부터 시작"
◇ 쌀 한 가마니 받고 시작한 유도…가족의 헌신으로 우뚝 선 유도 천재
이준환이 유도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는 스포츠를 좋아한 아버지 덕분에 수영, 태권도, 권투 등 다양한 운동을 배웠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동네 도장에 등록해 유도와 인연을 맺었다.

남다른 운동 신경을 갖고 있던 이준환은 유도를 배운 지 3개월 만에 지역 유소년 유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노란띠를 맨 이준환은 '검은띠' 형들을 손쉽게 넘어뜨렸다.

이준환은 "당시 우승 상품이 쌀 한 가마니였다"며 "아버지가 매우 좋아하셨고, 본격적으로 유도를 배우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뛰어난 실력을 발휘한 이준환은 안산 관산중학교 유도부에 스카우트됐다.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던 이준환의 가족은 안산으로 이사했다.

이준환은 "유도를 제대로 가르쳐주시려고 온 가족이 터전을 옮긴 것"이라며 "가족의 희생과 지원으로 유도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관산중을 거쳐 의정부 경민고에 진학한 이준환은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그는 "고교 때 현 남자 73㎏급 국가대표 이은결(21·용인대) 선배와 같은 체급에서 경쟁했다"며 "2년에 걸쳐 5연패 했는데, 그땐 정말 유도를 그만두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이준환은 "어떤 기술을 쓰고, 어떤 작전을 써도 이길 수 없었다"며 "큰 벽을 만난 느낌이었고, 더는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기"라고 곱씹었다.

이은결을 꺾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이준환을 크게 성장시켰다.

그는 이때 주특기인 소매들어 업어치기 기술을 완성했다.

이준환은 "고교 졸업 직전 이은결 선배와 6번째 승부에서 승리했다"며 "내 유도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종주국 일본' 뒤집은 이준환 "내 유도는 지금부터 시작"
◇ "이제는 모두의 견제 대상…내 유도는 지금부터 시작"
큰 부침 없이 성장하던 이준환은 지난해 12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열린 2021 아시아 오세아니아 청소년선수권대회 도중 왼쪽 무릎을 다쳤다.

그는 "귀국 후 정밀검진에서 인대의 70%가 파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며 "6개월을 쉬어야 했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친 몸으로도 태극마크를 단 뒤 시니어 데뷔 시즌을 치렀다.

불편한 무릎 상태로 이준환은 첫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지난달 5일 조지아에서 열린 IJF 트빌리시 그랜드슬램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20여 일 만에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연거푸 넘어섰다.

도쿄올림픽 우승자 나가세와 3회전 경기가 백미였다.

이준환은 지도(반칙) 2개에 몰려 지도패 벼랑 끝에 섰다.

지도 1개를 더 받으면 그대로 패하는 상황이었다.

경기 종료 45초를 남긴 상황에서 이준환은 재빠르게 왼쪽 어깨로 나가세를 무너뜨려 업어치기 절반 승을 거뒀다.

그는 겸손했다.

"원래는 오른쪽 어깨로 업어치기 하는데, 상대의 허를 찌른 것"이라며 "운 좋게 기술이 들어갔다.

앞으로는 나가세 선수가 왼손 업어치기도 철저하게 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환은 "이번 우승은 상대 선수들이 내 특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라며 "이제는 정밀 분석을 하며 견제할 것이다.

운이 아닌 실력으로 대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랜드슬램 우승 상금 5천 달러(약645만원)를 모두 부모님께 드렸다는 이준환은 이제 다음 목표를 향해 뛴다.

이준환은 '2012 런던올림픽 이후 한국 유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궁극적인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지만, 지금은 매 순간 모든 노력을 쏟고 싶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