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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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가 그나마 중산층 언저리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는 대기업 연봉뿐입니다. 정부가 그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습니다."

"남한테는 희생과 노력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죠."
추경호 부총리.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난 28일 발언에 직장인들이 폭발했다. 국내 주요 대기업 경영진을 만나 “물가 상승과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발단이다. 직장인 익명 앱인 블라인드와 각종 커뮤니티에는 추 부총리의 발언을 놓고 하루종일 논쟁이 이어졌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직장인의 실질 구매력을 억제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신들 월급부터 깎아라"는 공격도 쏟아졌다.

추 부총리는 지난 28일 서울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기업인 간담회에서 “최근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을 자제해주고 생산성 향상 범위 내 적정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치솟는 임금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성장률을 갉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설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만큼 이를 억제하기 위해 임금 상승폭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물가 상승→임금 상승→고용 감소·제품 가격 인상→물가 상승’의 악순환 고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우려는 일부 현실화했다. 300인 이상 대기업 근로자의 올 1분기 월평균 임금총액은 694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613만2000원) 대비 13.2% 증가했다. 임금 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18년 1분기(16.2%) 후 처음이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임금인상 억제 요구는 섣부른 주장이라고 맞선다. 정부 등 각계의 고통 분담과 생산성 향상 주문 등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직장인은 정부·정치권에 "은행과 발전회사에 이어 정유사까지 공격하더니 인건비 상승을 억제해달라고 한다"며 "정작 자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치권과 정부가 은행의 이자수익을 감축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한전의 전력도매가격(SMP) 상한제 도입으로 발전사 수익을 줄였다. 이어 정유사 이익을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 논의도 불붙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와 정치권은 고통분담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한 직장인은 블라인드에 "매번 물가가 오를 때마다 임금만 못 오르게 막고 있다"며 "결국 급여 직장인들이 희생하라는 것인데 이게 보수와 시장주의를 표방한 사람들이 할 얘기냐"고 반문했다. 다른 직장인은 "인플레 요인의 상당 부분은 공급 측면 영향"이라며 "공급을 늘릴 생각부터 해야지 임금 등 수요부터 꺾으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 꼬집었다.

다른 직장인은 "추경호 부총리의 말이 이론적으로는 맞다"며 "임금 상승으로 소비자 구매력이 올라가면 물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정부 발언을 옹호하기도 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