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거래에서 부동산소유명의자 대신 배우자나 친인척이 계약장소에 참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참석한 사람이 부동산 소유명의자와 가까운 혈연관계일수록 참석한 사람에게 위임권한이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 현재 거래관행이다. 그렇지만 위임권한을 수여받지도 않은 채 위임받은 것처럼 사칭하는 사례가 실무상 적지않고, 결국 그 피해는 위임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거래상대방에게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위임관계확인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위임관계가 있었다고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상당하고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표현대리”라는 제도로 피해자를 보호해 주기도 하지만 그 요건은 엄격한 편이다.

다음에서 소개할 서울남부지방법원 2006. 12. 29.선고 2005가합17991호 근저당권설정등기말소 판결은, 부동산 소유명의자의 처가 남편 몰래 남편의 인감도장을 훔쳐 남편의 인감증명서를 대리로 발급받은 후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타인으로부터 거액의 빌리면서 남편 소유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사례에서, 표현대리가 성립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근저당권을 말소하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부동산을 매매하는 경우에 비해 부동산을 임차할 때나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줄 때 위임권한확인에 있어 주의가 소흘한 우리 부동산거래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판결전문이다.

1. 사안의 개요

가. 원고는 별지 목록 기재 부동산(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 한다)의 소유자이고, 피고는 이 사건 부동산의 근저당권자이다.

나. 원고의 처인 000은 2004. 10.경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고 금고에 보관되어 있던 원고의 인감도장을 몰래 가져가 인감증명서를 대리 발급받은 뒤 000, mmm, nnn, lll 등과 공모하여 원고의 위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를 이용하여 2004. 10. 19.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앞으로 채권최고액 6억 7,500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하기로 하는 내용의 근저당권설정계약서(채무자는 sss과 fff이다)를 작성하면서 근저당권설정자란에 원고의 성명을 기재하고 그 옆에 위 인감도장을 날인하고,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신청을 법무사 aaa에게 위임한다는 내용의 위임장과 원고 불참하에 원고가 위 근저당권설정 등기의 등기의무자 본임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의 확인서면을 작성한 후 원고의 인감도장을 각 날인하여 원고 명의의 근저당권설정계약서, 위임장, 확인서면을 각 위조하고, 같은 날 이 사건 부동산에 주문 제1항 기재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쳤다.

다. 원고는 2005. 3.경 sss을 상대로 sss이 위 나.항에서와 같이 원고의 동의 없이 무단으로 원고의 인감도장, 인감증명서를 이용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포함한 원고 소유 여러 부동산에 관하여 피고 등 명의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주었음을 청구원인으로 하여 서울가정법원 2005드단1###3호로 이혼소송을 제기하였고, 2005. 5. 6. 원고와 000은 이혼한다는 조정이 성립되었다.

라. sss, vvv, xxx 등은 위와 같이 무단으로 원고의 인감도장, 인감증명서 및 등기권리증을 행사하여 이 사건 부동산을 비롯한 원고 소유의 부동산들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이를 담보로 피고를 비롯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차용하여 편취하였음을 이유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 불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죄로 서울서부지방법원 2006고합9%%호, 2006고합1%%호로 기소되었다.

2. 판단
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부동산에 관한 원고 명의의 근저당설정계약서는 sss이 원고의 동의를 받지 않고 위조한 것이므로 위 근저당권설정등기는 원인무효의등기라고 할 것이어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나. 민법 제126조 표현대리 주장에 관한 판단
피고는, sss은 원고의 처로서 일상가사대리권이 있고,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체결 당시 원고의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피고의 아버지로 대리인인 fff가 이 사건 부동산을 직접 방문하여 원고의 거주 여부, 이 사건 부동산의 담보가치 등을 확인하였으므로 피고로서는 sss에게 원고를 대리하여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을 체결할 권한이 있는 것으로 믿었으며, 이와 같이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의 법리에 따라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등기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살피건대, 갑 8호증의 2 내지 5, 12, 19 내지 21, 34 내지 42의 각 기재를 종합하면 원고가 sss에게 대리권을 수여했는지 여부를 피고 및 피고의 대리인 fff가 원고에게 확인한 적이 없는 사실, 피고가 vvv에게 427,000,000원이나 되는 거액을 대여하면서 vvv과 원고의 관계를 확인한바 없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바, 이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 당시 sss이 원고의 인감도장 및 인감증명서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만으로는 sss이 원고로부터 이 사건 근저당권설정계약 체결에 관한 대리권을 수여받았다고 피고가 믿은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

3. 결 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인용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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