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쿠릴 열도 남단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의 명칭을 러시아식 이름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잇따라 나왔다.

러시아 관영 인테르팍스 통신과 극동 지역 매체 등에 따르면 25일(현지시간) '정의로운 러시아'당 지도자 세르게이 미로노프는 쿠릴 열도를 관할하는 사할린주와 사할린주의회에 지역 명칭을 '사할린주 및 러시아군도'로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미르노프는 "쿠릴 열도 4개 섬 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다투는 상황에서 우리 영토를 양보할 수 없다는 뜻에서 지역명 변경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연방우주공사(로스코스모스) 사장 드미트리 로고진 역시 지난 23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쿠릴 열도 4개 섬 명칭을 러·일 전쟁(1904∼1905년)에 참전했던 러시아 해군 함정 등 이름으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로고진은 방송에서 이들 4개 섬이 러시아식 명칭으로 불리지 않는 것이 러시아 실효 지배에 의문을 제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또 "순서에 상관없이 섬들 가운데 하나는 순양함 '바략'으로, 또 다른 2개 섬은 일본 함대에 맞섰던 소형군함 '카레예츠'와 바략함 함장인 '프세볼로트 루드데프' 등의 이름을 따서 불러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하보마이 군도는 '태평양의 러시아 영웅-선원의 군도'로 명칭을 바꿀 수 있다고 언급했다.

로고진이 사례로 든 바략함과 카레예츠호는 1904년 2월 9일 러·일 전쟁의 서막을 알린 인천 제물포 해전에 투입된 함정들이다.

러시아는 이 해전에서 바략함과 카레예츠호 등을 잃었다.

당시 러시아 지휘관들은 일본의 공격을 받자 자국 군함을 일본에 넘겨줄 수 없다고 판단해 이를 침몰시키기로 했다.

쿠릴 열도는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반도 사이에 펼쳐진 1천300㎞에 달하는 도서군으로,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이 가운데 쿠나시르, 이투루프, 하보마이 군도, 시코탄 등 남쪽에 있는 4개 섬을 북방영토라 부르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2022년 판 외교청서에도 "북방영토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지만 현재 러시아에 의해 불법 점거돼 있다"는 내용을 포함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영유권 분쟁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서방 제재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5일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전권대표가 쿠릴 4개 섬에 대한 전면 개발 계획을 밝히자 양국의 긴장은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