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일자리 늘어나는 효과 미미…노동자 임금만 삭감돼"
2000년대 초반 도입된 임금피크제 두고 노사갈등 계속
노동계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을 환영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26일 대법원 판례가 나온 이후 논평에서 "지금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는 지속돼서는 안 된다"며 "대법원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적으로 환영한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금융권과 공공기관의 경우 임금피크제 시행 시 노동자에게 별도 직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가 세져 불만이 커지고 수당 삭감 등으로 갈등만 커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판결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기를 바란다"며 "한국노총은 현장 지침 등을 통해 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무효화 및 폐지에 나서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법률원장인 정기호 변호사는 연합뉴스 통화에서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대법원이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단 근거로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대상 조치의 미흡', '합리적 이유 없는 연령을 이유로 차별' 등을 제시한 데 아쉬움을 나타냈다.

대법원이 언급한 요소가 해소되면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 변호사는 "대법원이 자본가들의 퇴로를 만들어줬다"며 "앞으로 노동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임금피크제는 근로자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는 시점부터 임금을 점차 깎는 대신 근로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기 전 기업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고령 근로자에게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을 할 수 있었다.

이는 근로자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하고 노인 빈곤 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고령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과 근로자 양측의 입장을 어느 정도 조율해 도출한 것이 임금피크제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금융기관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신용보증기금이 2003년 7월 적용한 것이 처음이다.

정부는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제시하며 제도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임금피크제는 고령층의 실업을 완화하면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덜고 고령층의 숙련된 업무 능력을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업이 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낮추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한국노총은 "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 당시 이 제도가 청년 신규 채용을 늘릴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청년 일자리가 늘어나는 효과는 미미했다"며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만 삭감됐다"고 비판했다.

임금피크제의 유형은 정년보장형, 정년연장형, 고용연장형 등으로 다양하고 사업장별로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은 정년을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의 효력은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판례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 완화 목적으로 일정 연령 이상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에는 앞으로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