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간시장'의 김홍신 작가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과 관련해 내가 작성하지 않은 내 명의의 허위 글이 나돌고 있어 경찰에 수사 의뢰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김 작가는 "법륜스님과 지난 8일부터 1주일 일정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내가 쓰지 않은 내 명의의 글이 카톡 등을 통해 매우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김 작가는 연합뉴스에 보내온 글은 '국민의힘이여, 지금을 절망하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쓰였다. 이 글엔 "국회를 장악한 주사파 민주당이 예산안을 독점해 나라를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다", "종북세력들과 중국을 섬기는 사대주의 세력들의 마지막 발악이 오늘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김 작가는 "3년 전에는 박근혜 전(前) 대통령을 성녀(聖女)로 추앙하는 허위 글이 내 이름으로 엄청나게 나돌았고, 2년 전에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지독하게 비판하는 조작 글이 내 명의로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다"고 했다. 김 작가는 "허위 글을 작성해서 돌린 사람은 개인적으로 나를 아는 사람 같지는 않다"면서 "어떤 사람 또는 세력이 내 이름을 이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김 작가는 "평생 공적인 일 말고 개인적으로는 고소와 고발 따위는 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그동안 참아왔다"면서 "그렇지만 내가 쓰지 않은 글로 망신당하는 일을 더는 못 참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를 통해 경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1981년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해진 김 작가는 방송활동을 많이 했고, 1996년부터는 8년간 비례대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 번 이상 걷기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 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 잔씩만 마시기.그렇게 하루에 예닐곱 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11일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책 집필 루틴(일상 습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루틴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한강 루틴'이라는 별칭이 붙어 퍼지고 있다.한강 작가가 6일 스웨덴 스톡홀롬 노벨박물관에 찻잔과 함께 기증한 자필 메시지에는 새벽 기상, 걷기, 차 마시기 등의 루틴이 적혀있었다. 과거에도 한강은 2023년 출판한 인기작 수록집 '디 에센셜 한강'을 통해 "스트레칭, 근력 운동, 걷기를 하루 2시간씩 한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게"라고 밝힌 바 있다. 삶에서 루틴을 만드는 것에는 어떤 이점이 있으며, 한강 작가가 지켜온 루틴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까.의학계에서는 사람마다 기상 시간은 다를 수 있어도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2월 미국에서 발표한 '다인종 동맥경화 연구 조사'(MESA) 결과에 따르면 수면 패턴이 불규칙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심혈관질환 발생률이 2배가량 높았다. 대사증후군 발생률도 30% 증가했다.글쓰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집중력을 향상해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작품
자신을 1980년 5월 광주에 계엄군으로 투입됐던 여성 정보병의 딸이라고 밝힌 프랑스 교포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 1000잔을 선결제한 사연이 화제다.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인근의 한 카페는 지난 1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를 공개하면서 “유선을 통해 후원하는 이유를 듣게 됐다. 그 마음이 너무 귀하고 가슴에 울림이 가득했다”고 전했다.프랑스에 거주하는 큐레이터 ‘그리다’(활동명) 씨는 SNS에 ‘아침이슬로 다시 만난 세계; 어느 계엄군 딸의 고백문 그리고 천 잔의 커피’라는 글을 올려 이 같은 사연을 담담히 풀어냈다.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꿈도 많고, 재주도 많고, 공부까지 잘했던 우리 엄마. 작은 시골 마을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군대뿐이었다”고 설명한 뒤 “어느 날 엄마는 광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정보병이었던 엄마는 거리로 나가지 않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옥처럼 엄마를 짓눌렀다”고 말했다.올해 여름 한국을 찾아 당시의 얘기를 들었다는 그리다 씨는 “그날 엄마가 들려준 광주의 이야기는 아직도 엄마의 주름진 손마디를 얼어붙게 만들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아침이슬’을 부르다 목이 메곤 했다면서 “광주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던 미안함,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그들 곁에 있지 못했던 죄책감,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다는 쓸쓸함 때문이었을까”라고 돌이켜봤다.프랑스로 돌아와서도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무게를 “과거의 사람들이 감내한 희생으로 물려받은 인간의 존엄이었다”고 풀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