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교육 공백'도 주민 공동돌봄 공간에서 같이 이겨내
"민혁이는 밖에서 나무를 심고 있네."
"민혁아, 무슨 나무야?"
"석류입니다,"
"와, 정말 멋지다.
"
지난 4월 24일 오전 8시 45분. 온라인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에 네 가족이 각각 입장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부모들이 자녀와 집이나 야외에서 등장해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서울 서초구 공동육아 프로그램인 '함께키움'에 참여하고 있는 모임 구성원이다.
이날 활동 주제는 '나무 심기'였다.
각자 어떤 나무와 준비물을 준비했는지 이야기를 나눈 뒤 활동을 시작했다.
부모와 자녀가 대화를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영상을 통해 서로의 모습을 보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진행됐다.
어른들은 다른 가정의 자녀들과도 적극적으로 대화를 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질문에 "할머니께 선물해드리려고 나무를 심었어요", "홍콩야자나무를 심었어요", "저는 미니 당근을 심었어요.
당근이 자라면 먹을 거예요" 등 대답을 하며 나무 심기에 열중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온라인 활동이었지만 영상을 통해 서로 사진을 찍어주기도 하며 대면 활동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서초구는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제한됐던 2020년부터 줌을 통한 온라인 공동육아 모임을 지원했다.
서초구 여성보육과 김성희 팀장은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대면 활동은 과감히 중단했고, 발 빠르게 각 가정에서 자녀와 할 수 있는 꽃꽂이, 쿠키만들기 등 키트를 제공했다"며 "이후 온라인을 통한 공동육아로 범위를 넓혔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활성화됐다"고 전했다.
2022년 4월 현재 492가구가 116개 팀을 꾸려 서초구 '함께키움 공동육아'에 참여하고 있다.
서초구가 해당 사업을 시작했던 2011년에는 51가구가 10개 팀을 구성했다.
이때와 비교하면 10배가량 증가한 수치다.
육아 전문가들은 "서초구와 같은 사례는 이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자체에서 공동육아를 지원하고 활성화해 10년 이상 지속하면서 코로나 상황까지 극복할 수 있도록 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 자발적 공동육아 모임으로 코로나 사태 헤쳐나간 시민들
2년 이상 계속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코로나 시대에는 대부분의 엄마와 아이가 집안에 고립됐다.
지역 주민들끼리 만든 공동육아 모임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극복한 사례가 있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서 13살, 11살, 6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최영미(42) 씨는 지난 6년간 이웃들과 육아 품앗이 모임 '룰루랄라 친구들'과 초등생 돌봄 품앗이 '콩콩콩 하브루타'를 이끌어왔다.
'룰루랄라 친구들'에는 6살 아이 7명과 부모 14명, '콩콩콩 하브루타'에는 초등생 8명과 엄마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최씨는 맞벌이 가정에서 발생하는 돌봄 공백을 해결하고자 이런 모임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씨는 "아이가 부모와 함께 있다고 해서 돌봄 공백이 생기지 않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가 온종일 TV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면 부모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돌봄 공백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육아 모임 아이들은 친구의 엄마를 '이모'라고 부르며, 부모가 모두 집에 없을 때 이모의 집에서 모여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부모가 바빠 자녀들의 끼니를 챙겨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이웃이 반찬을 가져다주며 서로의 아이들을 돌봤다.
먼저 퇴근하는 워킹맘이 이웃의 자녀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각자 집으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공동육아에 '빨간불'이 켜지자, 부모들은 머리를 맞대고 공동육아 방법을 고민했다.
이후 각 가정에서 매일 자녀와의 활동사진을 공유하는 '1일 1인증사진 놀이'를 진행했고, 부모들은 서로 고립된 상황 속에서 는 육아를 지지하고 격려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자,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온라인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서로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아이들과 그림을 그린 뒤 소통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3년 차부터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텃밭 가꾸기를 하며 야외활동을 해왔다.
아빠들도 자녀와 '독서 릴레이' 활동을 하며 공동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공동육아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노정은(39) 씨는 "6살인 둘째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며 "코로나로 거리두기가 강화됐을 땐 온라인 모임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아이들이 즐거워했다"고 말했다.
노씨는 "일주일간 아이들과 주제를 정해 활동한 뒤 인증하는 '미션'을 하면서 돌봄 공백에 큰 도움을 받았다"며 "공동육아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부모들에게는 '육아 동지'가 생기는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초등학생들도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으면서 심각한 돌봄·교육 공백을 겪어야 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2020년 부모 5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어린이집·유치원 휴원 장기화에 따른 자녀돌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등학교 3학년 이하 자녀를 둔 부모 중 36.2%가량이 어린이집·유치원 등의 휴원으로 돌봄 공백을 경험했다.
최영미 씨는 초등학생 자녀들의 돌봄 공백을 해소하고자 이웃들과 '교육 품앗이'를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수학, 영어, 피아노, 요리 등 엄마들이 각자 잘하는 분야를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이었다.
아이들은 각 가정을 돌아가며 방문해 함께 공부했고, 부모들은 돌봄 공백을 해결할 수 있었다.
최씨는 "공동육아 모임이 아니었다면 코로나 시국에 아주 힘들었을 것"이라며 "코로나 비상사태가 완전히 종료되면 한 공간에 함께 모이는 가족형 공동육아로 나아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주민들이 만든 공동돌봄 공간, '코로나 교육 공백' 메웠다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에는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공동돌봄 공간이 있다.
2011년 마을 주민들이 한 아파트의 공용시설을 개조해 아이들이 모여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든 이 공간은 코로나로 인한 '교육 공백'을 잘 메운 공동돌봄 사례로 꼽힌다.
이 공간에서는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재능기부, 후원 등으로 다문화·맞벌이 가족 등에게 유아틈새 돌봄, 초등방과후 돌봄, 방학돌봄, 야간돌봄 등 다양한 돌봄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숲속작은도서관은 지역 아이들의 돌봄 공백 해결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2019년 여성가족부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주관한 '주민주도형 돌봄공동체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공간은 코로나 사태로 더욱 빛을 발했다.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자, 그동안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던 부모들도 "아이를 돌봐주실 수 있냐"고 문의했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주변 다른 지역에서도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찾아왔다.
특히 맞벌이 가정 자녀들의 돌봄과 교육 공백을 해결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숲속작은도서관 김진화(41) 대표는 "코로나 기간에도 매일 20~30여 명의 아이가 꾸준히 도서관을 이용했는데, 모임 인원을 방역수칙에 맞게 조정하기 위해 프로그램별로 반을 나누기도 했다"며 "필요한 경우에는 온라인 학습 지원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도서관 입장하는 사람은 손 소독제로 손을 닦고 체온을 잰 뒤 명부를 작성하도록 했다.
또 자녀를 도서관에 맡긴 부모들과 소통하는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었다.
실시간으로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사진을 촬영해 채팅방에 전송했고, 식사와 간식은 어떻게 제공하는지 상세히 설명했다.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서 보내주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런 과정을 거치며 부모님들 사이에 도서관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며 "채팅방에서 어떤 학교에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는지 등의 소식이 빠르게 공유됐고, 덕분에 지난 2년여간 도서관에서는 코로나 집단 확진 등의 문제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공동육아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와 학원이 문을 닫아도,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식사와 간식을 해결하고 학습 등 필요한 것이 있을 때 언제든지 도움받을 수 있어 엄마들이 마음 놓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도서관은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있어야 했던 엄마와 아이들이 숨통을 틀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한 주부는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 갇혀 육아하면서 우울해하는 내 모습을 가족들이 보는 것이 괴로웠는데,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다른 엄마들과 교류하며 활기를 찾았고 아이에게도 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글 싣는 순서]
① "'함께 키움' 덕분에 둘째·셋째도 낳았어요"
② 코로나 돌봄 공백 "함께 했기에 메울 수 있었다"
③ 워킹맘도 육아 품앗이로 코로나 견뎌냈다
④ '직접 돌봄' 원해도 현실적인 선택은 '어린이집'
⑤ '돌봄공동체' 지원 사업, 성공·실패를 가른 이유(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