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교회에 가셔서 동료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셨죠. 그런데 코로나로 그런 사회 활동이 완전히 단절됐어요.
"
송란숙(52) 씨의 어머니 정부임(74) 씨는 지난해 3월 치매 판정을 받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정씨는 교회, 향우회, 가족 모임 등 외부 활동을 꾸준히 하고 인근에 있는 산의 둘레길이나 중랑천 산책도 즐겼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교회 문이 닫히고 각종 모임이 제한되면서 정씨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스마트폰을 다루지 못해 온라인 예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집에서 TV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됐다.
외출은 식자재를 사려고 마트에 갈 때밖에는 하지 못했다.
송씨는 코로나19 이후 어머니의 증상 악화가 빨라진 것이 하루가 다르게 체감된다고 했다.
그는 "방금 콩나물을 무쳐 식탁 위에 올려놨는데 '저게 뭐냐'고 물으신다.
간단한 일도 못 하게 되는 경우가 하루하루 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 2년을 집에서만…증상 악화 더 빨라진 치매 노인들 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치매를 앓는 노인들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기간 기약 없는 사회적 단절을 겪으며 증세 악화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그나마 증상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던 관련 기관들마저 문을 닫으면서 가족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치매 환자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호진 한양대 구리병원 신경과 교수 등이 지난해 4월 '대한치매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조사된 치매 환자의 51.5%는 코로나19 이후 신경 행동적 증상이 악화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6개월 동안 신체 활동을 이전처럼 유지한 환자군은 42.3%가 증상 악화를 보인 데 비해 신체 활동이 줄어든 환자군은 66.7%나 증상이 악화했다.
연구진은 사회적 거리두기 및 격리 조치가 치매 환자들의 신체적·인지적·사회적 활동을 상당히 감소시켰고, 결과적으로 임상적 증상의 급격한 악화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호주·독일·스페인·네덜란드 연구진도 올해 2월 코로나19로 인해 치매 환자들의 우울증(39%), 망상(35.3%), 자제력 상실(24%)이 심해졌다는 결과를 내놨다.
돌봄 현장에서도 코로나19가 치매 환자들에게 미친 악영향을 체감하고 있다.
서울의 한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코로나 때문에 치매 환자들의 상황이 악화할 것을 우려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센터 문을 못 열고 비대면 프로그램만 진행했다"며 "어르신이 직접 풀어보실 수 있는 교재 등을 보내드렸지만 스스로 그것들을 챙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여건이 안 되는 분들도 많다"고 했다.
이어 "지역 특성상 혼자 살거나 노부부끼리만 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센터 소속 치매 환자 중 절반은 와이파이가 없어 수업을 아예 못 들었다.
특히 이런 분들이 코로나 기간 인지 저하가 많이 가속했을 것"이라며 우려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이 치매안심센터에 등록된 환자도 크게 늘었다.
이 센터는 코로나 이전에 치매 판정을 받는 환자가 한 달 평균 5.3명이었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8.3명으로 늘었다.
김성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 기간 치매 환자들의 우울감과 불안감이 늘어 약을 써야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약의 용량을 늘린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치매 환자들은 이미 뇌세포의 60%가 소실된 상태이기 때문에 남은 뇌세포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외부활동과 사회활동이 끊긴 것이 증상 악화에 아주 큰 악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 비극 재발 막으려면 사회적 관심 필요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치매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리고 있지만, 코로나19가 남긴 상흔을 치료하는 건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동안 증상 악화가 가속화된 치매 노인들에게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재성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치료에 있어 약물치료에 버금가게 중요한 것이 치매안심센터, 주간보호센터와 같은 국가 시스템"이라며 "코로나 기간 이 시스템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 했는데 이를 정상화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병 유행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만큼 팬데믹 상황에서도 치료 프로그램이 중단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비대면으로도 대면 프로그램만큼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일례로 용산구치매안심센터는 2020년 7월부터 인공지능 교육장을 열고 환자와 가족들에게 치료사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며 인공지능 스피커, 가상현실 기술, 로봇 인형 등을 이용한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임 교수는 "비대면 상황에서도 치료 프로그램들이 끊기지 않게 노하우들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영 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역시 "디지털 기술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진 만큼 최대한 이를 활성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치매 환자들을 위한 공공의료서비스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의 한 치매안심센터 총괄팀장은 "코로나를 계기로 우리나라 공공의료 서비스가 얼마나 낙후돼 있었는지 드러났다"며 "최근 팬데믹이 끝났다고 기간제로 채용했던 의료인들의 계약을 해지하고 있는 움직임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어떤 감염병이 닥칠지 정확히 예측해 시나리오를 짜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떤 상황이 와도 대처할 기반을 마련하는 건 가능하다"며 "코로나가 끝났으니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 공공의료의 밑바탕을 이 기회에 확실하게 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은경 김윤철 김준태 설하은 오명언 임지우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