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넝마주이·평화의 수호자
▲ 전각, 세상을 담다 = 석한남 지음.
고문헌을 연구해 온 저자가 전각(篆刻·나무나 돌에 글자나 문양을 새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청사(晴斯) 안광석(1917∼2004)과 운여(雲如) 김광업(1906∼1976) 작품 세계를 분석했다.

저자는 전각에 대해 "인장을 새겨서 제작하는 서예"라며 "인장은 극히 좁은 공간 속에 공예 미학과 문예 미학을 함께 담은 예술의 극치"라고 강조한다.

그는 위창 오세창을 근현대 전각의 큰 기둥으로 보고, 위창의 영향을 받은 청사와 운여 작품 약 150점을 소개했다.

저자는 "청사는 청대 전각 거장들의 필의(筆意)와 도법(刀法)의 바탕 위에 자신만의 심미안을 더해 전각사에 큰 획을 그었다"고 평가한다.

건축가 김중업의 형인 운여에 대해서는 변화무쌍한 인장들을 남기고 간 대가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광장. 292쪽. 1만9천원.
▲ 혁명의 넝마주이 = 김수환 지음.
독일 사상가 발터 벤야민(1892∼1940)이 1926년 12월부터 두 달가량 러시아 모스크바에 체류했을 때 경험을 쓴 책 '모스크바 일기'를 러시아 연구자가 새롭게 해석했다.

그는 '모스크바 일기'가 벤야민의 삶과 사상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특별한 텍스트라고 설명한다.

특히 1920년대 혁명기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의 인상을 적은 글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시각은 '모스크바 일기'를 벤야민과 아샤 라치스라는 여성 사이 관계를 중심으로 이해하는 일반적 견해와는 배치된다.

저자는 장난감, 연극, 문학, 영화라는 네 가지 주제어로 벤야민을 재조명한다.

그는 벤야민이 모스크바를 떠날 때 장난감이 가득 든 가방을 챙긴 데 대해 '과거'라는 거대한 문제의식과 '대중'이라는 이름의 프롤레타리아 문제를 중요한 생각의 화두로 삼게 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짚는다.

저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시아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얼의 '이미지론'과 소비에트 아방가르드의 '사물론'도 고찰했다.

문학과지성사. 368쪽. 2만원.
▲ 평화의 수호자 =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 지음. 황정욱 옮김.
서양에서 교황의 권력이 매우 강했던 1324년에 발간된 책. 교회 권력을 비판하며 인간에 의한 지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담았다.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태어난 저자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 무렵 독일에 대한 정치적 관심과 교황에 반대하는 마음을 품게 됐다고 알려졌다.

그는 교황 요한 22세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바이에른의 루트비히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자 세속 권력의 편에 섰다.

저자는 정의에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는 신(神)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견을 반박하면서 성직자는 국가의 도구적 부분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교회사를 전공한 역자는 해제에서 "마르실리우스의 모든 기획은 신정주의를 극단적으로 세속화하는 데 있었다"며 "그의 사상은 기존 사회질서를 재해석한 것이었고 이 질서의 기초를 인정하되 그 현실적 조직을 뒤집어 놓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길. 830쪽. 5만5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