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서도 무서운 현실 고발…인스타툰에서 책·드라마로

시어머니 생신날 며느리가 과일을 깎고 설거지를 한다.

덩그러니 사과가 두 조각 남았을 때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깝잖아. 너랑 나랑 한 개씩 먹어 치우자"고 권한다.

맞벌이하는 며느리가 출장을 간다고 하자 시부모님은 "새신랑이 밥도 못 얻어먹으면 어떡하느냐"고 아들 밥걱정부터 한다.

이 장면에서 묘한 기시감과 함께 불쾌감이 느껴진다면 이 웹툰을 정주행할 준비가 된 셈이다.

2016년 페미니즘 문학의 기폭제가 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다.

작품 속 며느라기(期)는 결혼 직후 '시댁 식구에게 예쁨받고 싶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기간'을 뜻한다.

주인공 민사린은 갓 결혼한 여성으로, '며느라기'에 빠져 있지만, 시어머님 생신과 제사, 명절과 같은 일련의 시댁 행사를 치러내면서 점차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 작품에는 격렬한 고부갈등이나 폭력적인 남편과 같은 극단적인 막장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시부모와 시누이, 남편 그리고 며느리가 등장해 콕 집어낼 수는 없는 불편함을 그려낸다.

비현실적인 인물은 제왕절개보다는 자연분만하라고 훈수를 두는 시어머니에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제사에는 보란 듯이 불참하는 손윗동서뿐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순히 며느리와 못된 시어머니, 얄미운 시누이, 자기만 아는 손윗동서 간의 이른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를 그린 것은 아니다.

제사에 오지 않은 뒤 전화를 건 손윗동서의 대사에서도 이런 점이 드러난다.

그는 제삿날 혼자 고생하고 불퉁하게 답하는 사린에게 "나는 그게 사린 씨랑 나랑 나눠서 할 일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래서 안 간 거고,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없어요"라고 말한다.

사린의 마음을 따라가던 독자들도 이 장면에서 깨닫게 된다.

내가 짜증 나고 힘든 것은 은근히 일하라고 압력을 주는 시어머니도, 시댁 행사를 나 몰라라 해 나에게 일을 떠민 손윗동서 때문도 아니다.

익숙하게 여겨 온 가부장제 문화 때문이며 나를 위해 내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도 퍽 현실적이다.

82년생 지영이는 고된 육아와 산후우울증 속에 기억을 잃고 이따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굴며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충격을 주지만, 사린이는 조용히 '며느라기'를 거부하며 꿈에서 깨어난다.

2016년 인스타그램에서 연재를 시작한 이 작품은 '인스타툰'으로 인기를 끈 뒤 책으로 출간됐고, 2020년 카카오TV 오리지널 콘텐츠로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올해는 웹툰에 나오지 않은 후속 이야기를 드라마 시즌2로 풀어내고 있다.

웹툰은 현재 카카오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