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계에선 이달 6일로 시행 100일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병언 기자
2일 서울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산업계에선 이달 6일로 시행 100일을 맞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병언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00일을 앞두고 국내 기업 58곳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이 수사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 시행 후에도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수사받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산업 현장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취지로 제정된 중대재해법이 예방 효과는커녕 기업과 CEO만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후 현재(1월 27일~4월 28일)까지 58건의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걸러 한 건 이상 사고가 난 셈이다. 이 중 사망이 56건(64명 사망), 질병(동일 유해 요인으로 1년 내 3명 이상 발생)은 2건(29명 발병)이었다. 현재까지 CEO 등이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건은 21건이다. 중대재해법은 오는 6일로 시행 100일째를 맞는다.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이 많아 입건 기업은 급증할 전망이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중 세 곳도 중대재해로 수사받고 있다. 국내 한 대형 로펌의 산업안전 분야 변호사는 “1~2년 뒤면 국내 주요 기업 CEO 상당수가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쌓여가는 수사, 지쳐가는 기업들

사고만 터지면 먼지털기 수사…"내년엔 CEO로 법정 가득찰 것"
수사 장기화도 문제다. ‘중대재해 1호’인 삼표산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 양주시 채석장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석 달이 넘도록 조사가 진행 중이다. 고용부는 지난달 말에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양주석산 현장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종신 삼표산업 대표도 입건된 상태여서 해당 기업 관계자들은 수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쯤 수사가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다.

다른 중대재해 수사 상황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 사고 58건 중 조사 대상 기업 관계자의 검찰 송치 여부가 결정된 사고는 두성산업의 급성중독 사태(기소의견 송치)와 한국남동발전의 근로자 추락사고(무혐의 종결)뿐이다. 한 사건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다른 사건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검찰 기소로 법정에 서게 되면 더욱 오랫동안 중대재해법에 발이 묶이게 된다. 최고경영책임자의 형사처벌 여부가 달린 기업으로선 검찰을 상대로 치열한 법리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 재판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향후 상당수의 CEO가 법원에 출근 도장을 찍게 될 것”이라며 “재판 준비로 이전보다 기업 경영에 집중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예방 효과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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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후에도 사고가 잇따르면서 정부가 기대했던 예방 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산재 사망자는 157명을 기록했다. 작년 1분기(166명)에 비해 소폭 줄어들긴 했다. 하지만 철근·시멘트·골재 등 건설자재 가격 폭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건설현장이 많았음을 고려하면 중대재해법 효과로 보기 불분명하다는 의견이 많다. 오히려 사망자가 늘어난 사업부문도 있다. 50인 이상 제조업 사업장이다. 이 부문 사망자는 31명으로 전년 동기(19명) 대비 63% 급증했다. 사망사고 비중이 가장 큰 제조업에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CEO를 처벌하도록 법을 강화하면 산업재해를 줄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논리가 중대재해법의 등장 배경”이라며 “많은 전문가가 지적했듯 안전관리 체계의 근본적 변화 없이 처벌만 강화하면 사고는 줄이지 못하고 처벌받는 기업과 CEO만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와 노동계 안팎에선 처벌 중심 중대재해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상철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업과 경영진 처벌보다는 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책임을 노사에 모두 부여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근로자들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의 주체로 규정해야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성/최진석/곽용희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