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가 남긴 것…디아스포라 소재로 기억해야할 역사 담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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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최종회 공개…일제강점기서 출발한 재일조선인 가족의 대서사
원작자·제작진 다수 한국계 미국인…일본선 반발, 한국은 '역사 알리기' 움직임 일제강점기부터 재일조선인 후세대의 삶까지 대서사를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 역사인 동시에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8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달 29일 마지막 회가 공개됐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후발주자로 비교적 구독자가 적은 애플TV+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데도 작품의 반향은 컸다.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민족사이자, 침략당한 경험을 가진 국가들의 아픔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모두의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세대 간 차이도 드러내
'파친코'는 1∼3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된 이후 나머지 회차가 일주일에 한 편씩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4화부터는 '자이니치'라고 불린 재일조선인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담겼다.
일본으로 건너가 모진 삶을 버텨낸 선자와 일본에서 나고 자라 미국 유학까지 마쳤지만, 결코 일본도 미국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한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젊은 선자는 가난에 찌든 삶을 하루하루를 억척같이 버텨낸다.
빚을 갚고자 정인에게 받았던 회중시계를 팔고, 남편이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자 생계를 위해 김치 장사를 시작한다.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기에 현명하고 강인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늙은 선자는 수십 년 만에 고향 부산 영도를 찾는다.
고향 바다에 발을 담근 선자의 눈에는 서러움과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지만, 곧이어 선자가 직면한 것은 낯섦과 단절이다.
아버지의 묫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고, 관공서에서 '특별영주권자'라고 신분을 밝혀야 하는 상황은 씁쓸함을 남긴다.
이런 선자의 모습은 솔로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선자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솔로몬은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일제의 핍박을 직접 겪진 않았지만,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솔로몬에게 역사는 그저 지나간 것이고, 돈이야말로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가치다.
그래서 솔로몬은 알짜배기 땅 주인 조선인 할머니에게 100억 엔에 지금껏 살아온 집을 팔도록 설득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런 솔로몬이 땅 계약이 무산되면 회사에서 쫓겨날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에게 "사인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먹먹하게 다가온다.
그에게 역사, 민족이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다.
◇ 원작소설의 힘…재미교포 제작진 손에서 드라마로 재탄생
'파친코'가 한국 역사물에서 흔히 언급되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인의 삶을 섬세하게 다룬 데는 원작의 힘이 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민진 작가가 30년 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소설 '파친코'는'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재구성해 극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전한다.
소설은 드라마가 공개된 뒤 출간 4년 만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작을 각색한 '파친코'를 한국 드라마로 정의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기업인 애플TV+가 한국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작한 작품인데다 공동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 각본을 쓴 수 휴 총괄 프로듀서, 테라사 강 로우 책임 프로듀서 등 제작진 다수가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제작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미국 작품이고, 이주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만큼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드라마가 한국적으로 느껴지는 데는 쌀밥, 김치 등이 상징적으로 쓰인데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언어가 모두 쓰이는 가운데 부산·제주도 사투리가 완벽하게 구현되는 등 작품에 한국적 색채가 짙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대사나 장면에도 한국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선자 아버지의 "세상에 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되는기다.
그래야 강하게 크는 기다"라는 대사나 선자 어머니가 어렵사리 구한 쌀로 정성껏 흰 쌀밥을 지어 멀리 떠나는 딸의 마지막 밥상에 올려주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역사 왜곡 경각심 일깨워…국제사회에 '역사 알리기' 움직임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바로잡는 모멘텀으로 역할 하기도 했다.
드라마에는 조선에서 벌어졌던 수탈과 강제노역뿐 아니라 관동대지진 학살 등 일본 본토에서 핍박받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품 공개 전부터 일본에서 '파친코'를 향해 '역사 왜곡'·'반일 드라마'라는 공격이 쏟아진 이유다.
애플TV+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일본에서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내 반응은 되레 국내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역사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일본의 일부 반응에 대해 "글로벌 OTT를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가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발로"고 비판하며 '역사 바로 알리기'에 나섰다.
온라인에서는 '파친코'를 언급하며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반응이 이어졌고,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이 겪었던 수난사를 정리한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도 '파친코'의 세계적 인기를 발판 삼아 소셜미디어(SNS)에 '파친코' 해시태그를 올리고 '한국 바로 알리기' 사이트를 만드는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했다.
반크는 "'파친코'의 글로벌 열풍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일본의 핍박과 한국인의 저항 역사를 세계에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며 "'파친코'의 높은 인기를 지렛대로 일본이 왜곡한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원작자·제작진 다수 한국계 미국인…일본선 반발, 한국은 '역사 알리기' 움직임 일제강점기부터 재일조선인 후세대의 삶까지 대서사를 다룬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 역사인 동시에 디아스포라(diaspora·고국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8부작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달 29일 마지막 회가 공개됐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후발주자로 비교적 구독자가 적은 애플TV+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데도 작품의 반향은 컸다.
주인공 선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압축한 민족사이자, 침략당한 경험을 가진 국가들의 아픔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이민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모두의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자이니치'…세대 간 차이도 드러내
'파친코'는 1∼3회차가 한꺼번에 공개된 이후 나머지 회차가 일주일에 한 편씩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4화부터는 '자이니치'라고 불린 재일조선인의 모습이 중점적으로 담겼다.
일본으로 건너가 모진 삶을 버텨낸 선자와 일본에서 나고 자라 미국 유학까지 마쳤지만, 결코 일본도 미국도, 한국에도 속하지 못한 선자의 손자 솔로몬은 디아스포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젊은 선자는 가난에 찌든 삶을 하루하루를 억척같이 버텨낸다.
빚을 갚고자 정인에게 받았던 회중시계를 팔고, 남편이 일본 경찰에게 잡혀가자 생계를 위해 김치 장사를 시작한다.
그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기에 현명하고 강인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늙은 선자는 수십 년 만에 고향 부산 영도를 찾는다.
고향 바다에 발을 담근 선자의 눈에는 서러움과 그리움의 눈물이 흐르지만, 곧이어 선자가 직면한 것은 낯섦과 단절이다.
아버지의 묫자리는 주차장으로 변해버렸고, 관공서에서 '특별영주권자'라고 신분을 밝혀야 하는 상황은 씁쓸함을 남긴다.
이런 선자의 모습은 솔로몬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선자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솔로몬은 성공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일제의 핍박을 직접 겪진 않았지만,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솔로몬에게 역사는 그저 지나간 것이고, 돈이야말로 자신에게 정체성을 부여해주는 가치다.
그래서 솔로몬은 알짜배기 땅 주인 조선인 할머니에게 100억 엔에 지금껏 살아온 집을 팔도록 설득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런 솔로몬이 땅 계약이 무산되면 회사에서 쫓겨날 것을 알면서도 할머니에게 "사인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먹먹하게 다가온다.
그에게 역사, 민족이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다.
◇ 원작소설의 힘…재미교포 제작진 손에서 드라마로 재탄생
'파친코'가 한국 역사물에서 흔히 언급되는 일제강점기 민족의 한뿐만 아니라 재일조선인의 삶을 섬세하게 다룬 데는 원작의 힘이 크다.
예일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이민진 작가가 30년 동안 구상하고 집필한 소설 '파친코'는'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재구성해 극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전한다.
소설은 드라마가 공개된 뒤 출간 4년 만에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원작을 각색한 '파친코'를 한국 드라마로 정의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기업인 애플TV+가 한국 제작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제작한 작품인데다 공동 연출을 맡은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전 감독, 각본을 쓴 수 휴 총괄 프로듀서, 테라사 강 로우 책임 프로듀서 등 제작진 다수가 한국계 미국인이기 때문이다.
제작사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미국 작품이고, 이주민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담고 있는 만큼 디아스포라 문학으로 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도 드라마가 한국적으로 느껴지는 데는 쌀밥, 김치 등이 상징적으로 쓰인데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언어가 모두 쓰이는 가운데 부산·제주도 사투리가 완벽하게 구현되는 등 작품에 한국적 색채가 짙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대사나 장면에도 한국 정서가 짙게 배어있다.
선자 아버지의 "세상에 정이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되는기다.
그래야 강하게 크는 기다"라는 대사나 선자 어머니가 어렵사리 구한 쌀로 정성껏 흰 쌀밥을 지어 멀리 떠나는 딸의 마지막 밥상에 올려주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역사 왜곡 경각심 일깨워…국제사회에 '역사 알리기' 움직임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역사를 바로잡는 모멘텀으로 역할 하기도 했다.
드라마에는 조선에서 벌어졌던 수탈과 강제노역뿐 아니라 관동대지진 학살 등 일본 본토에서 핍박받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작품 공개 전부터 일본에서 '파친코'를 향해 '역사 왜곡'·'반일 드라마'라는 공격이 쏟아진 이유다.
애플TV+ 역시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일본에서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내 반응은 되레 국내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다.
역사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역사 왜곡을 주장하는 일본의 일부 반응에 대해 "글로벌 OTT를 통해 일본의 가해 역사가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의 발로"고 비판하며 '역사 바로 알리기'에 나섰다.
온라인에서는 '파친코'를 언급하며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반응이 이어졌고,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이 겪었던 수난사를 정리한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도 '파친코'의 세계적 인기를 발판 삼아 소셜미디어(SNS)에 '파친코' 해시태그를 올리고 '한국 바로 알리기' 사이트를 만드는 글로벌 캠페인을 시작했다.
반크는 "'파친코'의 글로벌 열풍은 국제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일본의 핍박과 한국인의 저항 역사를 세계에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며 "'파친코'의 높은 인기를 지렛대로 일본이 왜곡한 한국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려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