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감소에 정상화 모색하나 속도는 아주 느려
'제로 코로나 교조주의'에 중국 경제 질식
'상하이 반면교사' 과잉방역 경향 더 심해져
[특파원 시선] 상하이 봉쇄 한달만에 얻은 '30분의 자유'
"6동 주민은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30분입니다.

시간 꼭 지켜주세요.

"
28일부터 기자가 사는 상하이의 아파트 주민들에게 동별로 하루 30분씩 단지 내 야외 활동이 허용됐다.

봉쇄 32일째 되는 날이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새로 나오지 않아 단지가 '통제구역' 아래 단계인 '관리통제구역'으로 바뀌면서 비록 단지 내로 국한되지만 하루 30분 집 바깥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바깥에서 노는 아이들은 목줄 풀린 강아지들처럼 신이 나 자전거나 킥보드를 타고 아파트 단지 내 찻길을 쏘다녔다.

어른들도 단지 내 도로를 모처럼 느긋하게 산책했다.

코로나19 집단검사를 받을 때 빼고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던 '금족령'이 조금 완화됐다.

하지만 짧은 자유의 시간 뒤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면서 새로 얻은 자유의 크기는 겨우 손바닥만 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3번의 코로나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받는 사이 봉쇄 한 달이 지나갔다.

2천500만명 시민의 삶의 터전인 상하이는 아주 느리게 나아지고 있다.

오랜 고강도 봉쇄로 이제 감염자 감소 추세가 뚜렷해졌다.

오랫동안 2만명을 넘던 일일 신규 감염자는 27일과 28일 이틀 연속 1만명 밑으로 내려왔다.

중국이 봉쇄 완화의 필요조건으로 삼는 '사회면 코로나 제로' 목표에도 조금씩 근접해가고 있다.

격리 시설 바깥에서 감염자가 나오지 않도록 한다는 목표다.

28일 상하이 신규 감염자 9천970명 중 격리 시설 바깥에서 발견된 이들은 108명으로 전날의 192명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전체 16개 구 가운데 10개 구에서 '사회면 코로나 제로' 목표가 일단 달성되면서 이들 지역부터 조만간 봉쇄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얻기까지 상하이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하는 창장삼각주의 경제가 결딴이 났다.

특히 4월부터는 공업, 건설, 서비스 활동이 대거 중단되면서 수많은 경제 주체들이 회복이 어려운 피해를 떠안고 있다.

오로지 '제로 코로나' 달성에만 초점이 맞춰진 마구잡이식 봉쇄가 초래한 의료 현장 혼란 속에서 희생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호흡 곤란으로 쓰러진 간호사가 코로나19 음성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자기가 일하던 병원에서 치료를 못 받고 다른 곳으로 실려 가다가 숨진 사건은 인민의 생명을 지상으로 여긴다는 명분을 앞세운 '제로 코로나'의 모순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또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인 상하이에 '식량난'을 불러일으켰다.

코로나19 감염 대폭발로 목이 달아날 지경에 처한 상하이 관리들이 '제로 코로나' 달성에 골몰한 나머지 슈퍼마켓·마트 직원, 배달 기사 등 식료품 유통 체인에 종사할 사람들을 충분히 풀어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었다.

이제야 중국 당국이 유통업의 숨통을 틔워준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한 번 망가진 식료품 공급망의 회복 속도는 아주 느리다.

허마셴성, 메이퇀마이차이 같은 근거리 인터넷 식품 배송 플랫폼은 부분적으로 운영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는 탓에 물건 주문을 넣는 데 성공하는 것은 로또 당첨과 같은 일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인터넷에서 제한된 식료품을 놓고 매일 수많은 이들이 몰려 손을 내미는 아수라장이 연일 반복 중이다.

상하이 봉쇄가 눈에 띄게 완화돼도 산업 등 경제 전반의 정상화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중국은 테슬라, 폭스바겐, SMIC, TSMC 같은 상하이의 중점 기업 666개부터 '폐쇄 루프' 방식 운영을 전제로 먼저 조업을 정상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일대 창장삼각주의 물류와 공급망 전반이 마비된 상황에서 조업 정상화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상하이의 한 우리나라 기업은 최근 공장 소재 구 정부에서 조업 재개증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구에 거주하는 직원들을 공장으로 데려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공장 소재 구에서 받은 조업 재개증이 정작 직원들이 사는 다른 구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하이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경제는 '제로 코로나 교조주의'의 득세라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됐다.

방역과 경제 사이의 새 균형점을 모색하던 상하이의 '정밀 방역' 시험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중국 관가에서는 확산 초기 단계부터 총력전으로 대응해 코로나19 확산을 꺾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공포감이 확산하고 있다.

인구 2천만명이 넘는 수도 베이징도 일일 신규 감염자 수가 수십명 수준에서 일부 구역을 봉쇄하고 시민 코로나 전수 검사를 벌이고 있는데 향후 이 같은 선제 대응은 중국 전역으로 급속히 번져나갈 것이다.

급기야 안후이성 우후처럼 감염자가 1명만 나와도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광둥성의 성도인 광저우시는 바이윈공항 근무자 3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자 29∼30일 전 국내선 노선 운영을 중단했다.

이처럼 방역 경계심이 높아지면서 중국에서 앞으로 상하이와 같은 코로나19 감염 폭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한층 작아지게 됐다.

상하이처럼 도시가 장기 봉쇄되는 사례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 확산 경로를 따라 중국 전역에 걸쳐 현재 베이징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준봉쇄가 만연하면서 산업, 물류, 소비 등 경제 전반의 효율은 크게 낮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로 코로나'를 자신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선전해온 터라 시진핑 주석은 오미크론 변이 유입으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지만 몸을 돌리기 어렵다.

절대 권력자인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 원칙도 잘 지켜나가면서 경제 피해도 최소화하라고 지시하지만 일선의 관료들은 코로나 실책에 따른 문책 몽둥이를 피하는 데 급급하다.

중국에 '제로 코로나 교조주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코로나 청정국'일 때 중국이 노골적으로 조롱하던 세계 여러 국가가 엔데믹 시대로의 전환을 준비하는 사이 중국에는 제로 코로나 고수를 위한 비용 청구서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