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경 출신 1호 변호사 "망막 찢어질 정도로 공부"
“가족들 생각하면서 버텼는데, 이제서야 종착역에 왔네요.”

국내 최초의 순경 출신 변호사가 탄생했다. 부산 기장경찰서 일광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박정원 경사(44·사진) 이야기다.

박 경사가 변호사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 것은 지난 21일. 삼수 끝에 2019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한 뒤 졸업과 함께 변호사시험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로스쿨 도입 이후 경찰대와 간부후보생 출신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사례는 있지만, 순경 출신 변호사는 경찰 역사상 박 경사가 처음이다. 박 경사는 “아내와 열한 살짜리 아들에게 신경을 쏟지 못해 늘 미안했다”며 “가족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박 경사는 1998년 동아대 법대에 입학해 사법시험에 도전했다. 그는 “1차 합격 경험은 몇 차례 있었지만, 최종 합격에는 실패했다”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곧바로 순경 시험에 응했다”고 말했다. 박 경사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4세에 순경 공채에 합격한 뒤 줄곧 지구대와 기동대에서 일했다.

다양한 민원을 접하면서 법 공부에 다시 도전했다. 업무가 형사법 관련 일이어서 전문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합법과 불법 사이를 오가는 애매한 일일수록 민원인의 불만이 높아요. 경찰관이 상대방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준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전문성을 키우면 민원인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이른바 ‘주야비휴(주간 야간 비번 휴무)’로 불규칙하게 돌아가는 파출소 업무 특성상 주간 수업 참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학교는 파출소에서 20㎞ 넘게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밤에 학교에 간 뒤 수업을 마치고 출근하거나, 오전에 퇴근한 뒤 수업을 듣는 생활이 반복됐다. 결국 탈이 났다. 망막이 찢어지는 ‘망막열공’과 원형 탈모였다. 그는 “(공부를 계속하다간)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는데, 포기가 안 되더라”며 웃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지 않았다면 합격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박 경사의 꿈은 수사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업무가 늘어난 경제사범이나 지능범죄 수사 부서는 경찰 내에서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박 경사가 수사 관련 부서를 지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다. 박 경사는 “변호사 자격이 가장 필요한 부서에서 꿈을 펼치겠다”며 “꿈을 이루는 데 오랜 기간이 걸린 만큼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에서 계속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