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2030 성향 정확히 파악해야"…'사회적 동력' 긍정 평가도 "퇴사는 저와 맞는 회사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어요."
2017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박모(29)씨는 주변에서 유명한 '프로퇴사러'(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사람)다.
4차례의 퇴사를 거쳐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에 정착한 그는 26일 "주변에서 '다른 곳도 똑같다'며 만류하거나 내게 문제점을 찾으려 했지만, 나는 스스로 한 결정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퇴사 자체가 20·30 세대에서 콘텐츠의 한 분야가 될 정도로 박씨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팟캐스트 전문 애플리케이션 '팟빵'에는 퇴사 콘텐츠가 40여 개에 달하는 데다 유튜브에도 관련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고, 퇴사를 돕는 컨설턴트 업체나 관련 모임도 등장했다.
퇴직 대행 서비스를 3년째 운영하는 오세경 대표는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의 80%가량이 2030 세대"라고 전했다. ◇ 급여·사내 문화·비전…퇴사 이유는 제각각
퇴사 경험이 있는 'MZ 세대' 청년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 겪게 되는 다양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김모(28)씨는 더 나은 급여를 위해 지난 1월 금융권 대기업으로 이직했다고 한다.
김씨는 "근로소득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보니 임금은 투자를 위한 '시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조금이라도 더 받는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사의 괴롭힘과 경직된 조직문화를 견디다 못해 퇴사를 결심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세종시의 한 공공기관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박씨는 "상사가 종이를 던지고 소리를 지르거나, 트집을 잡으며 결재를 반려해 난감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박씨는 "회사 갈 생각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다음 날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공무원으로 임용된 지 7개월 만에 사표를 던진 권모(29)씨도 "과장님이 출근 시간에 맞춰서 커피를 타라고 했다"며 "거절하자 그때부터 사수가 없는 사람 취급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몸서리쳤다.
권씨는 이후 상당 기간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를 선택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던 장모(32)씨는 퇴사 후 지난해 10월 요거트 가게를 창업했다.
장씨는 "잦은 출장과 야근으로 삶의 질이 떨어졌다"며 "내가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오랜 꿈이었던 창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안해성(38)씨는 포천에서 4년째 딸기와 상추 농사를 짓고 있다.
대기업 연구원이었던 그는 "내가 성과를 낸 만큼의 몫을 가져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퇴사한다고 말했을 때 주위의 반대도 적지 않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농장에 가는 게 놀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청년들이 가진 다양한 가치관과 생각은 획일적인 조직문화와 충돌하며 퇴직과 이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잡코리아가 작년 11월 2030 남녀 직장인 3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3명이 입사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최근 2년 새에 신입사원 퇴사율이 3배가량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첫 직장을 그만둔 사유로는 보수·근로시간 등 근로 여건 불만족(46.2%)이 가장 많았으며, 건강·육아·결혼 등 개인·가족적 이유(14.5%)가 그 뒤를 이었다고 한다.
잡코리아의 '첫 이직 경험' 조사에서도 업무 과다·야근(38.6%), 낮은 연봉에 대한 불만(37.1%) 등 처우에 대한 불만이 주요 퇴사 원인으로 꼽혔다.
이 외에도 ▲ 회사의 비전 및 미래에 대한 불안(27.8%) ▲ 상사 및 동료와의 불화(17.8%) ▲ 일에 대한 재미가 없어서(11.2%) 등의 결과가 나왔다.
◇ 기업에는 손실, 사회에는 동력…2030 성향 정확히 파악해야
20·30세대의 '미련없는' 퇴사를 경험해본 업계와 공직사회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고 한다.
신입사원 채용과 교육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이 그대로 증발하는 셈인데다, 구성원의 잦은 퇴사가 동료의 사기를 떨어트릴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회사에서는 돈이야 빌릴 수 있고, 기계야 사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인력 아니겠나"라며 "특히 잡아두고 싶은 인력이 경쟁사로 이직을 할 경우 회사에는 치명타"라고 말했다.
신입 퇴사율을 줄이려 다양한 노력을 하는 기업도 있다.
한 유명 가구회사는 지난해 신입사원의 조직 적응을 돕는 '온 보딩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입사 첫 1년간 인사팀에서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애로사항을 묻고 선배 사원을 멘토로 정해 기존 직원과 유대관계를 쌓을 수 있도록 돕는다.
조직을 떠나는 2030을 잡을 근본적인 방안은 이들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 대응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자신을 조직의 일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의 꿈과 행복을 중시하는 세대의 경향을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찬호 사회학자는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 성과를 내고 싶어 하고, 자신이 조직의 들러리로 인지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특성에 대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2030의 퇴사와 이직이 단순히 낭비되는 비용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새로운 조직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고, 기존 조직도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조직 문화 등을 보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2030이 자신의 역량을 인정해 주는 곳을 찾아가는 측면에서 (이직은) 긍정적"이라며 "고여 있으면 변화가 없는데, 자신이 발전하면 조직과 사회에도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퇴사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대신 조직 문제를 짚을 성찰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김 교수는 "젊은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으로 옮긴다"며 "이들이 왜 옮겨가는지를 고민하고, 급여와 복지 수준 등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