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이승원이 이끄는 한경art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지난 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이승원이 이끄는 한경art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함께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한경arte필하모닉이 올해 준비한 ‘한국을 이끄는 음악가’ 시리즈의 첫 공연이 지난 14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최근 지휘자로 크게 주목받으며 많은 초청을 받고 있는 이승원이 포디움에 올랐고, 유수한 콩쿠르를 석권한 뒤 독주자이자 실내악 연주자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이 협연자로 나섰다. 이 둘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현악4중주단(노부스 콰르텟)에서 함께 활동한 동료다. 비올라 멤버였던 이승원이 지휘 수업을 받기 위해 탈단한 뒤 5년 만에 한 무대에서 만난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주회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로 서막을 열었다. 이 곡은 정규 관현악의 규모와 50분에 이르는 길이를 가진 장대한 작품으로, 19세기에 유행한 ‘심포닉 콘체르토’, 즉 교향곡과 같은 협주곡의 시작점에 있다. 악기가 개량에 힘입어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고, 관현악 또한 반주를 넘어 제 소리를 내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었다. 독주와 관현악이 동등한 이중주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독주자 김재영이 정확하고 뚜렷한 고음과 바이올린의 날 선 음색을 도도한 매력으로 들려줬다면, 한경arte필하모닉은 우아한 사운드와 과장되지 않은 표현을 추구하며 대비를 이뤘다. 이런 특징은 이승원의 지휘 아래 조화를 이루며 바이올린과 관현악의 이중주를 구현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역량을 최고조로 발휘해 장대한 교향곡에 이르렀다.
청중에게 인사하는 김재영(왼쪽)과 이승원.
청중에게 인사하는 김재영(왼쪽)과 이승원.
김재영은 앙코르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사라반드를 연주했다. ‘더블 스톱(현악기 연주에서 두 개의 줄을 동시에 치는 것)’이 많아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을 명확한 사운드로 들려줘 좌중을 감탄하게 했다.

후반부 첫 곡인 라벨의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는 관악기를 위한 합주협주곡이라고 할 만큼 관악기가 주도한다. 약음기를 달고 연주하는 현악기는 환상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한다. 이승원이 지휘하는 한경arte필하모닉은 호른으로 시작하는 관악기 선율에서 각 악기의 독특한 음색을 한껏 드러내며 음악을 이끌었다. 여기서 악기의 균형을 맞춰 극적인 큰 변화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흘러가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점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것은 아쉽다. 반면 현악은 화음을 통해 긴장과 이완의 흐름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자욱한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곡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1919년 버전)이 연주됐다. 이 곡은 여러 러시아 민요를 차용해 만든 것이지만, 이를 다 알 수 없는 타국의 음악가들에게는 사실상 낯설고 환상적인 선율의 단편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러시아 음악가가 아니면 작곡가의 의도를 구현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면에 연주자는 자신의 세계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장점도 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한데, ‘불새’ 모음곡 중 1919년 버전이 자주 프로그램에 오르는 이유에는 이러한 점도 작용한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1919년 버전의 시나리오에 따른 각 장면의 뚜렷한 성격과 음악적 효과를 큰 폭의 표현력으로 그려내 환상적인 세계를 구현했다. 특히 목관악기에 선율을 많이 부여하고 금관악기의 화려한 하모니를 즐겨 사용하는 스트라빈스키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것 또한 흥미를 더했다.

이렇게 작품이 갖는 관현악적 특징을 해석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앙코르로 연주한 마누엘 데 파야의 발레곡 ‘사랑이라는 마법사’ 중 ‘불의 춤’에서도 각 악기의 음색과 리듬을 특징적으로 부각함으로써 감상자에게 자리를 뜨는 순간까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한경arte필하모닉은 ‘2022년 프로젝트’의 첫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앞으로 남은 시리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호연이었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