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발 기후위기 충격 최전선…우크라 사태 겹쳐 식량난 가중
국가부채 크게 불어나고 에너지 빈곤도 심각…"선진국 지원 시급"

남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잠비아의 서부 주에서 다섯 아이를 키우는 농부 클레멘트(42)는 해를 거듭할수록 궁핍해지고 있다.

불규칙한 강우가 점점 심해져 제대로 수확을 못 하고 있어서다.

잠비아에서는 주요 식용 작물로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 기후변화로 타격을 받고 있다.

클레멘트는 "강우 시기가 늦어지고 비 내리는 시간도 너무 짧아 늦게 경작해야 한다"며 "그러면 작물이 다 자랄 시간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잠비아에서는 소규모 자작농이 잠비아 식량 생산의 90%를 담당한다.

최근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은 잠비아에서 '조용한' 기후 위기가 인구의 13%가량을 심각한 식량 부족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고 전했다.

잠비아에서 어린이 82만1천명을 포함해 약 158만명이 환경 재난에 직면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 단체의 설명이다.

기후변화가 수확량과 가계 수입 감소, 물품·서비스 구매력 약화, 전체 경제 타격 등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빈곤 탈출을 어렵게 하는 셈이다.

[이슈 In] '11억 인구' 최빈국들의 고통…기후변화 피해도 가장 크다
◇ 온실가스 배출 미미한데도 피해는 가장 커…식량난도 악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이달 4일 잠비아 같은 최저개발국이 직면한 주요 4개 과제 가운데 하나로 기후변화 취약성을 꼽았다.

나머지 3가지는 치솟는 빚과 미미한 국제 교역 비중, 에너지 빈곤이다.

최저개발국은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불린다.

유엔은 1인당 국민총소득(1천18달러·약 125만원 이하) 등 일정 기준에 해당하는 국가를 최저개발국으로 분류한다.

최빈국은 유엔이 처음 분류한 1971년 25개에서 1991년 52개로 정점을 찍고 현재 46개로 줄었다.

최빈국은 아프리카에 33개(수단·앙골라·소말리아 등)가 몰려 있다.

아시아 9개(아프가니스탄·미얀마·방글라데시 등), 오세아니아 3개(동티모르·솔로몬제도 등),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1개(아이티)가 있다.

이들 최빈국의 인구는 총 11억명에 달한다.

최빈국은 지구 온난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이 미미하지만, 기후 위기의 충격을 먼저 가장 크게 받는 최전선에 있다.

UNCTAD는 지난 60년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배 가까이 증가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은 4배 늘어난 가운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비중은 각각 58.6%, 40.9%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최빈국 비중은 0.5%에 그쳤다.

영국 국제환경개발연구소(IIED)에 따르면 2020년만 놓고 봤을 때 솔로몬제도에서 코로나19 사망자는 없었지만 사이클론 '해롤드'로 3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홍수로 국토의 4분의 1 가까이 물에 잠겼고 거의 100만 가구가 침수됐다.

500만명이 수재를 당했고 최소 54명이 사망했다.

수단에서는 기록적인 홍수로 100명이 숨지고 50만명 이상이 대피했다.

개브리엘 스와비 IIED 연구원은 지난해 블로그에서 "지난 50년간 기후 관련 재난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의 69%가 최빈국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들 재난 가운데 18%만 최빈국을 강타했고, 최빈국 인구는 세계 인구의 13%에 불과한데도 피해는 가장 컸다는 설명이다.

기후 위기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최빈국의 식량 위기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지난 5일 아프리카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3억4천600만명이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고했다.

ICRC는 "아프리카의 수백만 가족이 매일 식사를 건너뛰고 있는데 심각한 기아가 향후 몇 달 사이에 악화할 위험이 있다"며 그 이유로 분쟁과 기후변화, 식량·연료 가격 급등을 들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세계 식량가격이 치솟으면서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아이티도 같은 상황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피에르 오노라 아이티사무소장은 "아이티 상점 물품의 70%는 수입품"이라며 "아이티는 밀을 주로 러시아, 그다음으로 캐나다에서 수입하는데 지난 2년간 밀가루 가격이 5배 뛰었고, 앞으로 또다시 급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 In] '11억 인구' 최빈국들의 고통…기후변화 피해도 가장 크다
◇ 불어나는 빚에 경제난 가중…심각한 에너지 빈곤
최빈국들은 빚은 늘고 경제는 나빠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UNCTAD에 따르면 최빈국들이 갚아 할 빚은 2011년부터 2019년 사이에 330억달러(40조6천억원)로 3배 넘게 늘었고, 올해는 430억달러(52조9천억원)로 불어났다.

잠비아는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2020년 외채를 갚을 수 없다며 국가부도와 같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선언하기도 했다.

빚에 허덕이는 최빈국들은 의료와 교육 등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빈곤, 코로나19와의 싸움에도 제대로 못 나서고 있다.

최빈국들은 국제 상품 수출시장의 점유율이 1% 안팎에 불과한데다 대부분 구리, 목화 등 가격 변동이 큰 기본재 수출에 의존해 경제 안정에 큰 도움이 못 되고 있다.

에너지 빈곤도 심각하다.

2019년 기준으로 최빈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전기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으로 UNCDTA는 추산했다.

약 5억7천만명이 밤에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충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기 접근성은 최빈국들의 코로나19 위기 극복에도 중요한 문제다.

전기 없이는 병원 백신 냉장고를 가동할 수 없고, 이는 백신 보급에도 장애가 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5회 최저개발국 콘퍼런스에서 "최저개발국들은 구조적 변화와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 확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들 국가의 경제난 극복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촉구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