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마케팅 격전지
일회성 행사에 100억 이상 투입
"국내선 전문의약품 광고 못해
불법 리베이트 조장" 지적도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지난달 27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과 지난 4일 그래미 시상식은 세계 제약·바이오기업엔 마케팅 격전지였다. 이 기간 미국 TV에서 황금시간대 시청자에게 선보인 의약품 광고만 16개에 이른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에서 대중광고가 금지된 전문의약품이다. 시대에 뒤처진 전문의약품 규제가 한국 소비자 알권리만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올해 그래미 시상식 기간 TV 광고를 한 제약·바이오기업은 11곳이었다. 항암제 당뇨치료제 습진약 우울증치료제 등 상당수가 전문의약품이었다. 올해 그래미 시상식 광고료는 30초당 1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제약·바이오기업이 일회성 행사인 그래미 시상식을 위해 100억원 넘는 비용을 지출했다는 의미다.
글로벌 제약사는 소비자에게 신약을 각인시키고 약 사용법 등을 알리기 위해 마케팅비 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그래미 시상식 시청자는 2000만 명에 육박한다. 비만약 1위 기업인 노보노디스크는 먹는 당뇨치료제 라이벨서스의 첫 상업 광고를 그래미 시상식 기간 선보였다. 얀센의 궤양성 대장염치료제 스텔라라 광고도 시청자에게 첫선을 보였다. 스텔라라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동아에스티 등 국내 제약사가 앞다퉈 바이오시밀러 개발에 나선, 연 매출 7조원에 이르는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꼽힌다.
그래미 시상식보다 앞서 치러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황금시간대 방영된 광고 60개 중 5개가 의약품 광고였다. 코로나19 백신을 선보이며 돈방석에 앉은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는 행사 후원사로 나섰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30초짜리 광고 비용은 20억~27억원이다. 과거 소비재 등 생활용품 광고가 대다수였던 것을 고려하면 올해 제약사들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팬데믹 탓에 환자 등을 대상으로 직접 제품을 알리기 힘들었던 제약사가 이들 시상식을 마케팅 기회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화이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 고지혈증약 리피토 등을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성장시키면서 대중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미국 제약사가 의약품 TV 광고 등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은 연간 8조원에 육박한다. 광고비 지출 1위 의약품은 류머티즘치료제 휴미라다. 애브비가 한 해 쓰는 돈은 6000억원을 넘는다.
하지만 국내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들 의약품 정보를 대중에게 폭넓게 알리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전문의약품은 환자에게 ‘홍보’하는 것조차 금지돼 있어서다. 국내 환자는 자신이 복용하는 약에 대한 정보조차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등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시대인 만큼 불필요한 규제는 풀어야 한다”며 “제품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다 보니 불법 리베이트를 조장하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