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서 사실관계를 떠나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의 오·남용 가능성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국민 혈세가 허술하게 쓰이지 않도록 감시하고자 하는 한국납세자연맹의 노력이었다. 2018년 대통령 내외의 의전비용 및 특활비 집행내역 등의 정보공개 청구가 청와대 거부에 따른 소송에 직면했으나, 지난 2월 납세자연맹의 승소로 이어졌다. 문제는 대통령 임기가 불과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항소를 강행했다는 점이다.
만약 관련 기록물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대통령 퇴임 다음 날부터 최장 30년까지 비공개된다. 결국 소송으로 다퉈 법률로 보호해야 할 이익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2심(항소심)이 각하될 가능성이 크다. 연맹 측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소송 중 기록물까지 비공개 결정하는 대통령기록물법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할 태세다.
거의 비슷한 상황이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유족들이 관련 정보공개 청구소송에서 승소했으나 청와대 측이 즉각 항소했고, 역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에 유족들은 청와대의 항소 취하와 대통령기록물 지정 반대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리기까지 했다. 유족 측 변호사는 "대통령기록물법은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유족이 원하는 정보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하는 것은 법의 목적과 배치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두 가지 사건 내지 논란은 전혀 출발점이 다르지만, 청와대의 대응 방식이 판박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공무원 피살 사건에선 대북(對北) 관계와 관련해 일반에 공개하기 어려운 국가적 이익이 혹여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김 여사 옷값 논란이 뒤엉킨 특활비 문제에서도 청와대는 '안보 관련 사항이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했다. 여기저기에 온통 '안보' 이유를 가져다 붙이니 관련 해명의 진정성이 의심받고, 국민적 의혹은 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통령기록물 열람 및 제출을 막는 보호장치가 없어 중요한 기록물일수록 대통령 임기 말에 무단 유출되거나 파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통령기록물을 거의 사적으로 소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제도적 미비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7년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이 제정되기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 제정 취지가 위의 두 가지 논란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마치 정권의 치부를 가리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납세자연맹이 헌법소원을 제기할 만하다 싶다. 대통령기록물법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잘못된 선례가 이어져선 안 될 것이다. 정권 교체기 이임하는 정부와 대통령의 방패막이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대통령기록물법을 합리적 수준에서 개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요구를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민망하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