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아산 독립운동 기록된 농민 일기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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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발생한 해인 1919년 3월 31일 충남 아산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양상이 기록된 일기가 공개됐다.
근현대 자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간여행 김영준 대표는 1919년 아산 염치면 백암리에 거주한 농민이 쓴 약 180쪽 분량의 일기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표지에는 '기미년도'(己未年度), 마지막 면에는 '대정구년도 일월 부분'(大正九年度 一月 部分)이라는 글자가 각각 적혔다.
기미년은 1919년이고, 일왕 연호 대정(다이쇼) 9년은 1920년이다.
필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나, 경주 김씨로 짐작된다.
그는 양력과 음력 날짜, 요일, 날씨를 기록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간략히 정리했다.
첫 일기 작성 시점은 1919년 2월 18일이고, 마지막 일기는 이듬해 2월 10일에 썼다.
조사를 제외한 글자는 대부분 한자로 적었다.
김 대표는 특히 1919년 3월 31일 내용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일기 작성자는 "밤 9시 30분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며 "병사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와서 흩어졌다"고 했다.
이날 백암리에서는 이화학당 재학생 김복희와 백암교회 부설 영신학교 교사 한연순이 주도한 횃불 시위가 벌어졌다.
김복희와 한연순은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다쳤고, 결국 체포돼 공주감옥에서 4∼5달간 수감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
김복희는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이기도 했다.
일기를 살펴본 김일환 호서대 교수는 "일기 작성자는 김복희 아버지와 왕래하며 지냈고, 3월 31일 만세 시위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며 "아주 세밀하지는 않지만 아산 지역 3·1운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근현대 자료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간여행 김영준 대표는 1919년 아산 염치면 백암리에 거주한 농민이 쓴 약 180쪽 분량의 일기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표지에는 '기미년도'(己未年度), 마지막 면에는 '대정구년도 일월 부분'(大正九年度 一月 部分)이라는 글자가 각각 적혔다.
기미년은 1919년이고, 일왕 연호 대정(다이쇼) 9년은 1920년이다.
필자는 이름을 남기지 않았으나, 경주 김씨로 짐작된다.
그는 양력과 음력 날짜, 요일, 날씨를 기록하고 그날 있었던 일을 간략히 정리했다.
첫 일기 작성 시점은 1919년 2월 18일이고, 마지막 일기는 이듬해 2월 10일에 썼다.
조사를 제외한 글자는 대부분 한자로 적었다.
김 대표는 특히 1919년 3월 31일 내용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분에는 태극 문양이 그려져 있다.
일기 작성자는 "밤 9시 30분쯤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며 "병사 수십 명이 무기를 들고 와서 흩어졌다"고 했다.
이날 백암리에서는 이화학당 재학생 김복희와 백암교회 부설 영신학교 교사 한연순이 주도한 횃불 시위가 벌어졌다.
김복희와 한연순은 경찰을 피해 도망가다 다쳤고, 결국 체포돼 공주감옥에서 4∼5달간 수감 생활을 했다고 알려졌다.
김복희는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이기도 했다.
일기를 살펴본 김일환 호서대 교수는 "일기 작성자는 김복희 아버지와 왕래하며 지냈고, 3월 31일 만세 시위에도 참여했던 것 같다"며 "아주 세밀하지는 않지만 아산 지역 3·1운동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