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야드서 명예복직·퇴직 행사…"긴 싸움, 오늘 마친다"
"투쟁 상징 옛 작업복은 가져 가겠다…여러분은 미래로 가 달라"
37년 만에 복직한 노동계 대모 김진숙 "두드리던 문이 열렸다"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습니다.

"
25일 낮 부산 영도구 HJ중공업 내 조선소 야드.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단상 위로 올라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37년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오게 된 감격을 이렇게 표현했다.

HJ중공업 전신인 한진중공업의 푸른색 작업복을 입고 무대에 선 그는 "검은 보자기에 덮어 쓰인 채 어딘지도 모르고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 수백 명에게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도로 앞을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이 흘렀다"면서 "그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 만에 여러분 앞에 섰고, 저에게는 오늘 하루가 37년이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김 위원의 명예 복직이자 명예퇴직인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HJ중공업 홍문기 대표를 비롯한 사측과 제주 강정마을 투쟁을 이끈 문정현 신부 등 노동계 인사들이 모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HJ중공업이 대한조선공사이던 1981년 용접공으로 입사한 20대의 김 위원은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뒤 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여러 차례 고초를 겪었다.

같은 해 회사는 강제적인 부서 이동을 명령했고, 이에 김 위원이 반발하자 결국 해고했다.

그는 부당해고임을 주장하며 지난 37년간 법적 소송과 관계기관 중재 등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때에는 영도조선소 내 크레인 위에서 309일 동안 고공 농성을 벌이며 노동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37년 만에 복직한 노동계 대모 김진숙 "두드리던 문이 열렸다"
김 위원이 해고된 기간 대한조선공사는 1989년 한진중공업으로, 다시 2021년에는 HJ중공업으로 3차례나 이름을 바꿨다.

20대이던 김 위원도 어느덧 나이가 들어 2020년 만 60세 정년을 넘겼고, 법적으로 복직의 길이 막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노사 양측이 전격적으로 합의하면서 김 위원의 명예 복직이 성사됐다.

김 위원의 복직 소식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 송두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등은 '인간 존엄성 회복'이라며 일제히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37년 만에 처음 출근한 김 위원은 아침 일찍부터 자신이 예전에 일했던 곳을 둘러봤다.

안전모를 비롯해 옛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챙겨 입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은 "탄압과 분열의 상징인 옛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다"면서 "여러분은 이제 미래로 가십시오. 더는 울지 않고 더는 죽지 않는 그리고 더는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에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꽉 차는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히 가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러분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친다"면서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해줘 고맙다"며 동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겼다.

홍문기 HJ중공업 대표는 "이제 회사는 사명까지 바꾸고 새 출발 하는 만큼 기존의 해묵은 갈등은 털고 노사가 함께 재도약에 집중하자"면서 "김진숙 님의 앞으로의 삶에 행운과 건강이 충만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HJ중공업 노사는 이날 김 위원 복직을 계기로 해묵은 노사갈등을 털어 내고 100년 기업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장기농성의 상징이었던 영도조선소 정문 앞 천막 농성장도 설치된 지 600여 일 만인 이날 노사가 자진 철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