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로 원유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한층 가열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보다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을 보였던 유럽중앙은행(ECB)이 좀 더 매파적(통화긴축적)으로 나설지도 주목된다.
23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가 연초 마이너스에서 이번 주에 0.27%까지 올랐다.
독일 국채는 통상 안전자산으로 간주돼 우크라이나 위기와 같이 정국이 혼란한 시기에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금리는 내린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므로 가격 상승은 금리 하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독일 국채 금리의 움직임은 통상적인 행보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WSJ은 이런 기현상을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설명했다.
채권 투자는 현금흐름이 고정돼 있어 물가가 빠르게 오르는 시기에는 구매력을 줄어들게 하므로 전통적인 채권에 대한 수요는 감소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 국채 금리 상승은 인플레이션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SG)의 호르헤 가라요 금리·인플레이션 전략가는 "시장이 올해 더 높은 인플레이션을 정말로 기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곡물과 유가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는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생산과 수출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밀과 대두 가격은 우크라이나 위기 심화에 초강세를 보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밀 선물 가격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장중 한때 부셸(곡물 중량 단위·1부셸=27.2㎏)당 8.8875달러로 4.2% 올라 2012년 이후 9년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후 밀 선물은 부셸당 8.8475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대두 가격도 역시 한때 부셸당 16.75달러로 2012년 말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가 이후 부셸당 16.71달러로 내렸다.
브라질 등 남미 지역의 가뭄으로 올해 산출량 전망이 어두워진 점도 대두 선물 가격의 상승에 일조했다.
에너지 시장도 들썩거리면서 북해 브렌트유는 이날 하락했으나 전날에는 장중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해 201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보다 27% 올랐다.
러시아가 최근 유럽으로 천연가스 공급을 줄인 여파다.
유럽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발 인플레이션 가속 우려는 ECB의 통화정책 결정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영국 자산운용사 Abrdn의 제임스 에이데이 투자 관리사는 "유가 상승은 중앙은행들이 좀 더 매파적이 되도록 압박할 것"이라며 "현재 소비자 물가가 한층 더 오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분쟁이 지역 내 경제 성장세의 발목을 잡을 수 있어 ECB가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을 좀 더 오래 유지할 명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ECB 이사회의 프랑스 측 대표는 이날 ECB가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전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WSJ은 유럽의 물가 상승세가 계속 유지된다면 오랫동안 저성장·저물가를 보였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