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中 압박 이겨내는 4가지 방법
복거일 작가는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에서 강대국에 대한 약소국의 유화정책을 “미끄러운 비탈길에 발판 없이 서 있는” 형국으로 표현했다. 핀란드와 소련의 관계처럼 약소국이 양보하기 시작하면, 강대국은 더 큰 양보를 요구해 끝도 없이 밀리게 된다는 의미다. 그는 약소국의 생존법으로 문제될 만한 사안은 가능한 한 축소시키는 ‘불가시성 전술’과 경제적 자율, 언론자유 등 주권에 대해서는 확고히 입장을 지키는 ‘요새전술’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불가시성 전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그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초기 편파 판정 시비가 일자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격침해 버려야 한다”고 했다. 흡사 2000년 6월 마늘파동 때 신중하지 못한 정부의 과잉 대응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부는 관세율을 30%에서 315%로 올리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으나, 중국 정부가 폴리에틸렌과 휴대폰에 대한 금수조치로 보복하자, 견디다 못해 관세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려 놓고 말았다.

작년 7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중국 관련 인터뷰 발언은 문재인 정부의 요새전술이 전무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경우다. “확고한 한·미 동맹의 기본 위에서 대중국 외교를 펼쳐야 수평한 대중(對中) 관계가 가능하다”는 야당 대선 후보의 말을 주한 중국대사가 트집 잡고 나섰다. 중국 대사는 “중·한 관계는 결코 한·미 관계의 부속품이 아니다”는 언론 기고문도 모자라 외교부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누가 봐도 내정간섭이 분명한 그의 언행에 외교부는 역시 공식 입장이 없었다.

“영수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1등을 다투고 패배는 인정하지 않는다. 총서기와 함께 미래로 가자.” 이번 올림픽의 중국 선수단 출정식 구호다. 흡사 ‘백년의 마라톤’의 막판 스퍼트를 향한 응원 구호처럼 들린다. 백년의 마라톤은 1949년 중국 정부 수립부터 100년이 되는 2049년에 세계 패권국에 올라서겠다는 중국의 최고 국가목표다. 수천 년 중국의 그늘 속에서 살았고, 지금은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우리에게 중국의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우는 상황이다.

차기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문 정부에서 망가진 외교력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이제 외교는 단순히 안보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직결되는 국익의 핵심 분야다. 1965년 수교 후 최악으로 틀어진 한· 일 관계의 회복도 절실하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변국들 간의 협력이다.

외교의 사고틀은 시나리오다. 1994년 진대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전무) 시절, 간부 워크숍 주제는 ‘삼성 반도체가 망하는 두 가지 시나리오’였다. 이미 그때 나온 시나리오 중 하나가 일본이 반도체 장비의 한국 수출을 금지시킬 때의 대응방안이었다. 2019년 7월 일본이 3개 품목의 금수 조치에 들어갔을 때 삼성이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나리오 사고를 하는 정부라면 ‘3불(不)정책’이 무효화될 경우 중국의 반응에 대한 대응책도 강구하고 있어야 한다.

중국에 대항할 힘은 결국 실력에서 나온다. 현재 한국이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다. 만일 반도체마저 중국에 따라잡힌다면 배울 것 없는 한국에 대해 어떤 고압적 자세로 나올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마당에 반쪽짜리 ‘반도체특별법’을 통과시킨 정부와 국회는 국익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호주는 중국만이 경제적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베이징의 괴롭힘에 맞서길 두려워했다. 중국의 진정한 본질과 야망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도 위험하다. ” 중국 공산당의 호주 사회 침투 행적을 낱낱이 해부한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의 《중국의 조용한 침공》 중 한 대목이다. 지금 세상은 “사드 같은 흉악한 것 말고 보일러 놔 드리겠다”고 비아냥댈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