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커지는 '지자체장 간선제'
“지방의회 의원들의 자질 논란은 해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원 간접 선거로 시장을 뽑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나온 건지 한숨만 나옵니다.”

서울시의 한 공무원은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방의회가 뽑는 ‘간선제’ 도입을 지난 17일 공식화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부가 지방의회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토로했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장 선출 방식을 다양화하는 특별법 추진을 위해 각 시·도 의견을 수렴하는 중이다. 크게 세 가지 안을 두고, 각 지역에서 하나를 선택해 도입 여부를 주민 투표로 결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지방의회가 투표권을 갖고 지원자(지방의원 제외) 중 지자체장을 뽑는 방식이 첫 번째 방안이다. 지방의회가 지자체장에 지원한 지방의원 중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방식, 직선제를 유지하면서 지방의회 소속 감사위원회를 두는 방식도 있다.

각 지자체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는 분위기다. 지방의회가 그 지역의 권력을 독점하게 되는 부작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방의회 의원들의 역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방의원은 지역 토호세력이 상당수여서 업무 능력이나 전문성, 도덕성 검증 없이 알음알음 자리를 꿰차는 사례가 많다”며 “시민도 못 믿는 지방의원들의 간접 선거로 시장을 뽑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방의원 자질 논란은 1995년 제1기 민선지방자치가 시작됐을 때부터 이어졌다. 2018년엔 김병태, 서호영 대구시의회 의원 등 지방의원 5명이 당시 이재만 대구시장 후보 불법 여론조사에 가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음주운전, 인사청탁, 금품수수 등 지방의원들의 불법행위가 전국 각지에서 적발되고 있다.

이번 간선제 논의는 3월 대통령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발표돼 갑작스럽고 무리한 시도라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선 “문재인 정부가 출범 때 국정 목표로 삼았던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이란 토대를 닦았다는 업적을 만들려고 무리수를 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도만 바꾼다고 ‘지방정부’ 수준의 분권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개정된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의회의 권한과 책임은 종전보다 확대됐다.

지방의회 구성 및 운영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의회에 지나치게 권력이 쏠리면 부작용이 커질 공산이 크다. 지방의회 역량을 끌어올리는 게 먼저다. “시민이 믿지 못하는 지방의회에 지자체장을 선임하는 권한까지 주면 오히려 지방자치를 후퇴시킬 것”이란 목소리를 정부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