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러시아 규탄 동참 거부…미국·일본 등과 엇박자
"미국, 더 믿을 만한 파트너 필요해 '오커스' 결성한 듯"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가 3차 세계대전 위기까지 거론되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불협화음을 노출했다.

[이슈 In] 中 견제에 합심 쿼드, 우크라 사태엔 한목소리 어려운 이유
북한과 중국의 도발 대응에는 다른 쿼드 회원국과 한목소리를 낸 인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대한 규탄은 사실상 거부하면서 미국, 일본, 호주 등과 뚜렷한 입장차를 보인 것이다.

인도의 뿌리 깊은 비동맹 노선과 친(親)러시아 외교가 쿼드의 일치된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난해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를 결성한 것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통의 안보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더 믿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 불협화음 노출 쿼드 외교장관 회담…인도, 러시아 규탄 거부
지난 1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쿼드 외교장관 회담에서 4개국 장관은 북한과 중국을 겨냥해 일치된 목소리를 냈다.

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자 불안정을 조성하는 행위인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며 "안보리 결의에 일치하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전념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새해 들어 잇따라 미사일 시험에 나서며 도발 수위를 높인 데 대해 인도태평양의 주요 4개국이 강력한 경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은 또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를 포함하는 해양의 규칙에 근거한 질서에 대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법을 준수하는 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중국을 직접 거론하진 않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일부 지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동남아 국가 및 일본과 갈등을 벌이고,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을 방해하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번 회담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를 낳으며 서방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 문제도 다뤄졌다.

하지만 북한이나 중국 이슈와 달리 회원국 간 불협화음이 빚어졌다.

[이슈 In] 中 견제에 합심 쿼드, 우크라 사태엔 한목소리 어려운 이유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협박과 러시아의 위험한 행동에 대한 복수 국가의 지지는 국제규범이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도 "일본으로서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의 일체성을 일관되게 지지해왔으며, 계속 국제사회와 연계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S.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장관의 발언은 뉘앙스가 사뭇 달랐다.

그는 쿼드 회원국이 대립보다는 협력과 협조에 주력하기를 바란다며 "우리 넷이 현실적이고 효율적으로 협력한다면 세계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호주 공영 ABC 방송은 "인도가 러시아와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도의 이런 입장은 놀랍지 않다"고 지적했다.

인도 일간 인디언 익스프레스는 "자이샨카르 장관이 최소 두 개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다른 3명의 외교장관들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며 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에 대해서는 완벽한 외교적 침묵을 유지했다고 꼬집었다.

◇ 오랜 비동맹 노선 인도,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와도 친밀
비록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인도는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와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와할랄 네루 초대 수상 때부터 확립된 이른바 비동맹 외교를 통해서였다.

네루는 1947년 인도의 독립 이후 형성된 미소 간 냉전 대립구도 속에 대외적 자주성과 국가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 외교 노선을 표방했다.

네루의 비동맹 외교정책은 ▲ 영토보전과 주권존중 ▲ 상호불가침 ▲ 내정불간섭 ▲ 호혜평등 ▲ 평화공존 등 1954년 4월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맺은 평화 5원칙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이 평화 5원칙은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에 계승돼 반둥 10원칙의 핵심 내용을 이뤘고, 반둥회의는 1960년대 들어 제도적으로 정착된 비동맹정상회의로 발전했다.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영연방 회원국이면서도 완전히 미국 편에 서지는 않은 인도는 냉전 시기 소련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고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슈 In] 中 견제에 합심 쿼드, 우크라 사태엔 한목소리 어려운 이유
인도는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 협의체 쿼드의 회원국이지만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가 창설한 상하이협력기구(SCO)의 멤버이기도 하다.

1996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제안으로 태동해 2001년 공식 출범한 SCO는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등 8개국이 참여하는 다자안보협력기구다.

전 세계 인구의 40%가 살고, 세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5분의 1을 차지해 규모 면에서 쿼드를 능가한다.

인도는 러시아와의 양자협력 관계도 매우 끈끈하다.

특히 군사 부문의 협력 관계가 두드러지는데, 인도가 수입하는 무기의 60%가량이 러시아제다.

인도는 지난해 12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직접 인도를 방문해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러시아제 첨단 방공미사일 S-400의 도입을 본격화하기도 했다.

러시아제 미사일을 도입하면 미군과 인도군 사이 무기 체계 운용 협력을 저해할 수 있다며 계약 취소를 종용해온 미국의 요구를 무시한 행보였다.

호주 ABC는 지난해가 인도가 소련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다며 양국은 지금도 백신과 우주개발에서부터 테러 방지와 무역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냉전 2.0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도가 또다시 핵심 국가로 떠올랐지만 여전히 불가사의한 파트너로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ABC는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모디 총리를 '절친한 친구'라고 부르지만, 모디는 푸틴에게 러시아가 인도의 '특별하고 변함없는 친구'라고 말했다"며 인도가 민주주의 진영 편일 수 있지만 동시에 비동맹 노선의 역사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몇몇 중요한 지정학적 이슈에 대한 인도의 입장이 다른 쿼드 회원국들과 달랐다"며 "미국, 영국, 호주의 오커스 결성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통의 안보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더 믿을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미국 정부의 조용한 자각의 결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