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 결정에 비판 쇄도…'팩트' 워낙 제한적이라 온정적 판결 나온듯
공정성·투명성 훼손 비난 고조…'베이징 동계올림픽=발리예바'되나
[올림픽] '도핑 위반자' 발리예바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어쩌라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마크 애덤스 대변인은 14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일일 브리핑을 앞두고 "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발리예바 사건으로만 기억되질 않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애덤스 대변인의 기대와 달리 이번 올림픽은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빼놓고는 얘기하기 어려운 대회가 될 것 같다.

스포츠중재재판소(CAS)가 도핑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확인된 발리예바의 여자 싱글 종목 출전을 승인해서다.

CAS는 도핑 사실을 적발했는데도 발리예바가 만 16세로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정보공개 보호대상자이며 그의 출전 기회를 박탈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것으로 판단해 올림픽 무대에 계속 서는 것을 허락했다.

CAS의 판결 후 반응은 명확하게 엇갈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는 공정과 투명성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스포츠의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러시아는 물론 발리예바의 우아한 몸짓을 올림픽에서 보고 싶었던 전 세계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림픽] '도핑 위반자' 발리예바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어쩌라고
도핑 위반 결과를 접한 뒤 발리예바에게 징계를 내렸다가 이를 철회한 러시아반도핑기구(RUSADA)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CAS의 판결을 존중한다고만 밝혔다.

새털 같은 몸으로 남자 선수들도 버거워하는 4회전 점프를 능수능란하게 펼쳐 신기록을 써내려 온 발리예바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빛낼 특급 스타로 평가받았다.

지난 7일에는 동료들과 피겨 단체전 금메달을 합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메달 획득 나흘 후인 11일 IOC가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위반을 공식 확인해 발표하면서 그는 벼랑 끝에 섰다.

발리예바가 어떤 경로로 금지 약물을 복용했는지, 누가 금지 약물 사용을 권했는지 등 발리예바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발리예바가 약물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건 확실하다.

지난해 12월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해 열린 러시아선수권대회에서 발리예바가 제출한 소변 샘플에서 금지 약물인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다.

발리예바는 이 대회 여자 싱글에서 비공인 세계기록을 작성했다.

트리메타지딘은 협심증 치료제로, 혈류량을 늘려 지구력을 증진하는 흥분제로도 쓰일 수 있어 WADA는 2014년 이 물질을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약물 검사 결과 도핑 규정을 어긴 건 명백한 사실이기에 발리예바가 여자 싱글에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도 달리 할 말은 없었다.

[올림픽] '도핑 위반자' 발리예바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어쩌라고
하지만 CAS는 ▲ 발리예바가 올림픽 기간 도핑에 걸리지 않았고 ▲ 도핑 결과가 채집 6주가 지난 이달 8일에야 RUSADA에 통보돼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이유를 들어 발리예바의 싱글 출전을 허용했다.

도핑 결과가 그렇게 늦게 나온 것은 발리예바의 잘못이 아니라는 평결도 곁들였다.

CAS가 6시간 가까이 청문회를 열었다고 하나 접근할 수 있는 사실 정보가 워낙 제한적이라 발리예바에게 온정적인 판결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결국 여자 싱글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도핑 규정 위반자 발리예바와 '불공정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우리나라 피겨 여자 싱글 국가대표 김예림(19·수리고)은 14일 공식 훈련을 마치고서 "대다수 선수는 CAS의 결정을 안 좋게 생각한다"며 ""한 미국 선수는 (정상 출전은) 공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같은 생각"이라며 "발리예바의 연기를 매우 좋아하지만, (이 같은 결정에 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소신 있게 말했다.

러시아가 국제 스포츠 종합대회에서 '도핑 악당'으로 낙인찍힌 터라 미국의 반응은 더욱 날카롭다.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 '러시아가 공정한 경쟁을 탈취했다'는 격한 발언이 미국 측 인사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올림픽] '도핑 위반자' 발리예바와 경쟁하는 선수들은 어쩌라고
러시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등에서 샘플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국가 차원의 조직적인 도핑 조작을 일삼아 국제 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WADA의 기준을 따르지 않는 러시아만의 도핑 규정에 대해 지금도 국제단체는 의심한다.

평소 쓴말을 자주 하는 IOC 최고참 위원 딕 파운드(80·캐나다)가 이번 발리예바 사건도 러시아가 전혀 반성하지 않아 발생했다고 일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발리예바의 도핑 규정 위반이 러시아선수권에서 발생했기에 관할 기관인 RUSADA가 앞으로 이번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조사할 예정이나 그 결과가 신빙성을 높일지는 알 수 없다.

철저한 조사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 미뤄진 피겨 단체전 시상식은 이번 올림픽 기간에는 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IOC의 전망이다.

결과에 따라서는 ROC의 금메달 박탈과 후순위 팀들의 승격 등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다.

메이저 스포츠 대회에서 러시아에 자국명과 국기(國旗), 국가(國歌) 등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CAS의 2년 징계는 올해 12월이면 끝난다.

도핑과 관련해 여전히 투명하지 못한 러시아가 권리 회복을 앞둔 상황에 세계 여러 나라는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