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發 천연가스 수급 불안에 석탄 화력발전 20%↑
"EU가 수입한 석탄 43%가 러시아산…러시아만 웃어"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 온 유럽의 석탄 의존도가 되레 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우크라이나 위기로 갈등을 빚고 있는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수입 비중을 낮추려는 노력이 대체 연료인 석탄 수입 증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참가국들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 발전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의 반대에도 급격한 탄소중립 정책을 밀어붙인 유럽이 석탄 발전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늘리고 있어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 1월 EU 석탄 수입량 1천80만t…작년 동기 대비 55.8%↑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운 뒤 이를 위해 화석연료, 특히 석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석탄이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이를 흡수해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그러나 최근 EU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거꾸로다.

13일 선박 중개업체 브레마 ACM이 선박 운항 추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EU의 1월 석탄 수입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8% 급증한 1천80만t으로 집계됐다.

전체 수입량의 43.2%가 러시아산이었고, 호주산이 19.1%였다.

EU의 지난해 12월 석탄 수입량 역시 작년 동기보다 35.1% 증가한 930만t이었다.

지난해 EU가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연료용 일반탄 수입량은 전년 대비 16.2% 늘어난 3천110만t이었는데, 대부분이 독일과 벨기에, 네덜란드로 갔다.

EU의 석탄 수입량이 급증한 것은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천연가스 수입 비중을 낮춘 데 따른 부작용으로 풀이된다.

EU는 전체 천연가스 수입량의 약 40%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를 둘러싼 갈등으로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우려가 커지면서 EU 각국이 천연가스 수입량을 줄였지만 대체 연료인 석탄 수입량은 증가한 것이다.

우크라 사태로 인한 정정 불안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보관이 용이한 석탄 수입을 늘린 측면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탄이 천연가스보다 전력원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올해 유럽의 천연가스 수요가 4.5%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EU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탄 수입을 늘렸지만 물량의 태반이 러시아산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석탄 수입을 늘렸지만 그 석탄도 결국 대부분 러시아로부터 구매한 것"이라며 "유럽용 석탄의 주요 공급국인 러시아가 크게 웃고 있다"고 꼬집었다.

◇ 주요국 석탄 화력 발전 늘면서 석탄 가격도 고공행진
IEA에 따르면 기후변화 대응 노력 등으로 미국과 EU에서 재작년 감소했던 석탄 화력 발전량이 지난해에는 약 20% 반등했다.

주요 탄소 배출국인 인도와 중국에서도 지난해 석탄 화력 발전량이 각각 12%, 9%가량 늘면서 양국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상 기후 탓에 유럽과 미국의 풍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가 무력화된 데다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체 발전원인 석탄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IEA는 세계적으로 석탄 화력 발전이 많이 늘어나면서 각국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없으면 올해 세계 석탄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유럽 내에서도 친환경 에너지 전환의 선도국으로 꼽히는 독일이 처한 상황은 환경 선진국의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일 에너지시장조사기관인 AGEB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은 기상 악화로 풍력발전이 10%가량 감소하자 폐쇄를 추진 중이던 석탄 발전을 대신 돌려 전력 위기를 막았다.

독일의 석탄 발전은 전년보다 18%가량 증가했다.

독일은 또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프랑스 등에서 수입하는 전력량이 2017년 2만7842GWh(기가와트시)에서 2020년 4만7600GWh로 늘었다.

급격한 탈원전·탈석탄 추진 정책이 오히려 석탄 발전 비중과 해외 전력 수입량을 늘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세계적인 수요가 늘면서 국제 석탄 가격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유럽에서 거래된 3월물 일반 석탄 가격은 78% 급등했고, 호주 뉴캐슬 발전용 석탄 가격도 71%나 뛰었다.

브레마 ACM의 산적 화물 분석가 마크 뉴젠트는 "콜롬비아와 미국 등 다른 주요 수출국의 공급 제약 탓에 석탄 시장이 더욱 경색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석탄 수출국인 인도네시아가 국내 수요를 확보하기 위해 1월 한 달간 석탄 수출을 금지했던 것도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인도네시아는 이달부터 수출을 재개하긴 했지만 2월 수출용 석탄 가격을 전월보다 20% 오른 t당 188달러로 인상했다.

아궁 프리바디 인도네시아 에너지부 대변인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천연가스 수급 불안 영향으로 화력 발전용 연료를 석탄으로 바꾸고 있다"고 가격 인상 배경을 설명했다.

런던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 리버럼 캐피탈의 톰 프라이스 애널리스트는 오스트레일리안파이낸셜리뷰(AFR)에 "연초부터 예상외의 오름세를 보이는 연료용 석탄 가격 상승세가 3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